(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삼성전자가 애플과의 특허소송 최대 격전지인 미국에서 연이어 열세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양사가 진행 중인 특허협상에서도 삼성의 입지가 다소 불리해지는 양상이다.

◇ 삼성, 애플 특허전 美 '열세'…다른 곳 '지지부진' = 삼성과 애플은 전 세계 10여 개국에서 2년 넘게 특허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미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승부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양사 모두 유럽과 아시아 등에서는 서로 방어에만 성공했을 뿐, 상대방에 대한 특허 공격은 대부분 무력화됐다.

삼성의 경우 네덜란드에서 일부 본안 소송을 승소했지만, 소송대상이 구형 제품이고 해당 지역 자체에 대한 판매량이 많지 않아 애플에 별다른 타격을 주기는 못했다. 국내에서도 승소했지만, 애플에 내려진 배상금은 4천만원에 그쳤다.

애플 역시 독일과 네덜란드 등에서 삼성의 일부 제품의 판매금지에 성공했지만, 삼성 측이 문제가 된 부분을 다른 기술로 대체한 탓에 실질적인 이득은 없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만은 양상이 다르다. 애플이 삼성에 비교적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은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새너제이)에서 진행된 1심 소송에서 애플에 5억9천950만달러(약 6천500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또, 5천억원 가량의 추가 배상금을 물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새로운 재판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6월에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애플이 삼성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결하고 수입금지 조처를 내렸지만, 지난 3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됐다.

또, 지난 9일 (현지 시각) "삼성의 제품이 애플의 일부 특허를 침해했다"고 최종 판정하며 삼성의 일부 제품에 대해 미국 내 수입과 판매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ITC는 작년 10월 삼성이 애플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관련 디자인 특허 1건과 상용특허 3건을 침해했다는 예비 판정을 내렸다가, 삼성의 요청으로 재심의에 들어가 이날 최종 판결을 내린 것이다.

ITC는 예비판결에서 특허권 침해라고 판단했던 4건 중 휴리스틱스를 이용한 그래픽 사용자 환경 관련 특허(949특허)와 헤드셋 인식 방법 관련 특허(501특허) 2건의 침해 사실을 최종적으로 인정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60일 안에 ITC의 판결 내용을 거부하지 않으면 삼성은 소송 대상이었던 갤럭시S와 갤럭시S2, 갤럭시 넥서스, 갤럭시탭 10.1 중 일부 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수 없게 된다.

◇ 美에서 '모방자' 이미지 벗지 못하면 협상에 '불리' = 이번 판결로 수입금지 조처가 내려지더라도, 대상 제품이 모두 구형 제품이라 삼성이 입게 될 손해는 미미한 수준이다.

또, 애플이 그동안 줄기차게 특허권을 주장하던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모양'에 대해서는 ITC가 특허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은 삼성으로서는 위안거리다.

그러나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미국 시장에서 '모방자' 이미지가 굳어진다는 점은 삼성에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이 때문에 삼성 측은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즉각 항소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규정상 현재로서는 ITC 판결에 항소할 수 없지만, 행정부의 판단까지 나오고 나서는 연방순회항소법원(CFAC)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ITC가 당사 제품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결정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우리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법적 절차를 포함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현재로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ITC의 판결을 거부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작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지난 3일 애플의 수입금지 조치를 거부한 데서 볼 수 있듯이 오바마 행정부는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보이고 있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자국 대표 기업이 애플에 불리한 조치를 내리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삼성의 특허침해를 인정한 ITC의 결정을 거부할 명분도 없다.

지난번에 ITC의 판결을 거부하고 애플의 손을 들어줄 때는 "표준특허로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업계에 필수적인 특허의 사용을 무분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적인 명분을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ITC가 삼성의 특허침해를 인정한 부분은 표준특허에 관한 것이 아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ITC는 삼성이 애플의 상용특허를 침해했다고 판결한 만큼, 미 행정부가 ITC 판결을 굳이 거부할 명분도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작년 하반기부터 재개된 것으로 전해진 양사의 특허협상에서 삼성의 입지가 불리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 로펌의 특허법 담당자는 "가장 큰 배상금과 강력한 수입금지 조치가 걸린 미국의 소송 결과가 양사의 특허협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따라서 현재까지 미국에서 밀린 삼성으로서는 어떤 식으로도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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