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성진 기자 = 미국과 프랑스 등이 최고 신용등급을 잃는 와중에도 'AAA'등급을 지켰던 영국이 1년4개월만에 다시 등급 강등 사정권 안에 들게 됐다.

경기침체 우려와 높은 부채비율, 유로존 위기 등 크게 세 가지의 대내외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트리플 악재'에 부닥친 상황이라고 할 만하다.

▲1년4개월만에 다시 등급 전망 '부정적'으로 =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14일 영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12~18개월 안에 영국이 최고 등급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영국이 국제 신평업계의 '빅3'로부터 등급이 강등될 처지에 놓인 것은 지난 2010년 10월 이후 1년4개월만의 일이다.

당시 영국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하면서 'AAA'등급 상실의 위협에서 벗어났었다.

영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세계 주요국들의 등급 강등 여파에서 그동안 한 발짝 떨어져 있던 국가였다.

미국과 프랑스의 등급을 내렸던 S&P도 영국의 등급은 손대지 않았다.

S&P와 피치는 영국의 등급과 등급 전망을 'AAA'와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무디스가 빅3 중에서는 가장 빨리 영국의 등급을 강등권 안에 포함시킨 셈이다.

무디스의 등급 강등 경고로 세계 주요 8개국(G8) 가운데 'AAA'등급을 안정적으로 지키고 있는 나라는 독일과 캐나다밖에 안 남게 됐다.

▲경제전망 악화에 높은 부채비율…유로존 위기도 '불똥' = 무디스가 가장 크게 문제로 삼은 부분은 영국의 암울한 경제전망과 높은 부채비율이다.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1분기와 2분기에 0.5%와 0.1%, 3분기에 0.6% 증가했다가 4분기에는 0.2% 감소로 돌아섰다.

2010년 4분기에 -0.5% 성장률을 기록하고 나서 1년만에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전체 GDP 증가율은 0.9%에 머물렀다.

영국 예산책임청은 올해 영국의 경제 성장률을 종전 2.5%에서 0.7%로 이미 내린 상태다. 실업률은 8% 중반대다.

영국 정부가 2010년 중반부터 재정적자를 줄이려고 긴축정책을 펴면서 소비가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영국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작년 3분기 기준 85.2%로, 유럽연합(EU)이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위해 설정한 건전재정 기준치(GDP 대비 60%)를 크게 초과하고 있다. EU 평균인 87.4%도 웃돈다.

이미 'AAA'등급을 잃은 프랑스와 같은 수준이다.

영국 정부는 긴축을 통해 2015~2016년에는 부채비율을 감소 추세로 돌려놓는다는 계획이지만, 살아나지 않는 경기가 발목을 잡고 있다.

무디스는 "향후 몇 년 동안의 성장전망이 현저히 나빠져 재정건전성 강화 계획의 불확실성이 증가했다"면서 "경제여건 또는 재정상태가 더 악화한다면 영국 정부의 목표 달성 여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은 유로화 대신 자국 화폐인 파운드화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유로존 위기의 직접적 타격에서도 비켜서 있었으나, 수출 감소 등을 통한 간접적 피해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무디스는 "영국은 유로존에 속해 있지는 않으나, 유로존에서 추가적인 충격이 발생할 리스크가 크다"면서 "영국과 유로존의 무역ㆍ금융 관계를 고려할 때 유로존이 영국의 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수당 긴축정책 비판 커질 듯 = 무디스의 등급 강등 경고로 영국 내에서는 보수당 연립정부가 한결같이 유지해 온 긴축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보수당 정권은 (지난 2010년) 집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이 등급 강등 영향권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긴축정책을 펴 왔으나, 영국은 등급이 강등될 수도 있는 처지에 다시 놓였다"면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 정권에 대한 일격이 가해졌다"고 평가했다.

노동당의 에드 볼스 예비내각(shadow cabinet) 총리는 "무디스의 조치는 총리의 긴축정책에 대한 중대한 경고"라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기를 부양하는 균형잡힌 정책이 없다면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이날 긴축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은 무디스의 발표에 대해 "영국이 부채 문제를 벗어날 수 없다는 증거"라고 평가하고, "등급 강등을 막으러면 정부가 당면한 재정건전화에 나서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sjkim2@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