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유경 기자 = "좋은 시절은 다 갔다"

국내 대형 IB의 기업 인수·합병(M&A) 부서에서 일하는 3년차 주니어 직원이 내던진 말이다.

그는 'M&A 전문가'의 꿈을 안고 증권가에 입성했지만, 수수료 덤핑 경쟁이 난무하는 현실에 좌절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 직원은 "M&A의 재무 자문에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문성을 인정받던 일 중 상당 부분이 이제는 단순한 작업이 돼버렸다"며 "경기 침체로 M&A 시장이 침체하면서 IB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상당수 증권사 주니어급 직원들이 새롭게 '뜨는 시장'인 사모투자전문회사(PE)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IB에서 PE로 이직하는 코스가 금융권의 대표적인 진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최근에 들어서야 MBK파트너스와 보고펀드, 한앤컴퍼니 등 PE가 M&A 시장의 큰 손으로 등장하면서 인력 이동이 느는 추세다.

국내 대형 PE의 한 임원은 "IB의 사정이 좋지 않은데 상대적으로 PE 쪽이 잘되다 보니 쟁쟁한 IB 출신의 주니어들을 다수 영입할 수 있었다"며 "미국 등 외국과 비교했을 때 국내에서는 PE가 막 커 나가는 초기 단계"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톱 5'에 드는 외국계 IB 주니어급 직원 중 상당수가 PE로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새롭게 둥지를 튼 곳은 국내 신생 PE부터 외국계 대형 PE까지 가지각색이다.

외국계 대형 IB에서 PE로 이직한 한 주니어급 직원은 "자문사의 역할을 하는 IB보다 PE에 와서 딜의 주체로서 일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IB는 딜을 성사시키고, 성공보수를 받아 수수료를 남기는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와는 달리 PE는 인수 또는 매각의 주체가 돼서 M&A를 수행한다.

이 직원은 "특히, IB에서 주니어급 직원은 클라이언트가 시키는 일을 주로 하지만, PE에서는 주도적으로 딜을 이끌어갈 수 있다"며 "실사 단계에서 인수 대상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앞으로 성장 가능성 등을 꼼꼼히 살펴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외국계 대형 IB에서 PE로 이직한 다른 주니어급 직원은 "IB에서는 대형 딜을 따서 높은 수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PE는 아무래도 투자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며 "인수한 회사가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PE로의 이직은 주로 헤드헌터나 개인적인 인맥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PEF(사모펀드) 시장이 이제 커 나가는 수준이고, PE의 주니어급 직원은 최소 1년~3년가량 IB나 컨설팅업체에서 일한 경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채용의 문은 매우 좁은 편이다.

'PE 붐'에도 IB에서 계속 크고 싶어하는 주니어들도 많다.

국내 대형 IB의 한 주니어급 직원은 "아직 국내에서 규모가 있는 PE는 몇 안 된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PE로 옮길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외국계 대형 IB의 한 주니어급 직원은 "로펌에서 공정거래위원회나 조세 관련 분야가 뜬다고 M&A 전문 변호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시장의 요구에 따라 특화된 M&A 전문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yko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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