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성진 기자 =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수줍은 성격 탓에 미국의 경제회복이 더딘 것일까'

한 개인의 성격이 세계 최대 경제국의 성장을 좌지우지할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실제 이런 주장이 나왔다고 미 경제전문지 포천이 14일(미국시간) 보도했다.

포천은 전미경제조사국(NBER)이 이번 주에 발간한 보고서에 버냉키 의장의 성격을 걸고넘어진 논문이 실렸다고 전했다.

로렌스 볼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는 '버냉키와 제로 바운드(zero bound)'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Fed가 경기회복을 위해 보다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분석하면서 버냉키의 의장의 성격에 주목했다.

Fed 외부의 정치적 압력과 미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지지는 않았다는 점 등이 Fed의 미지근한 정책 기조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으나, 버냉키 의장이 수줍은 성격 탓에 학자 시절의 과감한 입장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볼 교수는 설명했다.

버냉키 의장은 '통화정책의 대가'로 불리는 학자 출신으로, 의장이 되기 전에는 기준금리가 현재처럼 제로 수준일 때 경기부양을 위해 Fed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광범위하게 연구해 왔다.

그러면서 버냉키 의장이 한결같이 옹호해 온 조치들은 달러화의 가파른 절하나 인플레이션 목표 상향, Fed의 통화 증발을 통한 실질적인 세금 감면 등이다. 현재 Fed의 정책 기조로 보면 상당히 과격한 편이다.

볼 교수는 버냉키 의장이 지난 2000년에는 경기부양을 위해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일본은행(BOJ)을 꼬집는 연설을 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버냉키 의장은 Fed를 이끌면서는 자신이 학자 시절 주장한 조치들을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4% 이상의 인플레를 감내해야 한다는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같은 이들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인플레 목표를 2%로 적시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볼 교수는 버냉키 의장의 이런 입장 변화는 취임 후 적극적 조치에 반대하는 다수의 생각에 빠르게 휩쓸린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버냉키 의장이 Fed 내 반대파를 설득하는 데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Fed의 잇따른 경기부양 조치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Fed가 지나치게 과감하다는 비판도 나오는 실정이다.

특히 야당인 공화당에서는 버냉키 의장을 인플레 조장과 달러화 가치 하락의 주범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또 버냉키 의장은 Fed 의장으로서는 최초로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도입한 인물이기도 해서, 볼 교수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2000년대 중반 Fed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모건스탠리의 빈센트 라인하르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수줍은 인물이 금융위기 동안 갖가지 특수 기관을 만들어 가동시킬 수 있겠느냐"면서 "FOMC 내에는 버냉키 의장이 지나치게 과감하다고 생각할 인사들도 많다"고 말했다.

볼 교수는 이런 지적에도 버냉키 의장의 입장이 학자 시절과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아인슈타인이 물리학 수업에서 자신이 말하는 바를 이해하지는 않지만, 동의는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버냉키 의장은 근본적으로 이런 모습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sjkim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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