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라는 말이 있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2000년대 중반 미국의 거품을 빼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렸으나 오히려 시중금리는 떨어졌다. 당시 그린스펀 의장은 이 이유를 밝히지 못해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그 배경에 중국이 있다는 사실은 훨씬 뒤에 밝혀졌다. 중국이 막대한 경상 흑자로 벌어들인 달러를 미국 국채 매입하는 데 쓰는 바람에 미국의 국채금리(시중금리)가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무역흑자에도 수수께끼가 존재한다. 서방경제의 양대축인 미국과 유럽이 2008년 금융위기와 재정위기 이후 침체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한국은 기록적인 무역흑자 행진을 벌이고 있다. 서구의 위기에도 우리가 무역흑자 행진을 기록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리는 과연 어디에다 물건을 팔고 있는 것일까.

◆ 달러보다 많은 훙삐(紅幣)를 벌었다 = 답은 중국에 있다. 한국무역협회의 자료를 살펴보면, 2013년 1월부터 7월까지 한국의 1위 무역흑자 상대국은 중국이다. 우리나라는 이 기간 중국에 343억달러의 누적 흑자를 기록했고 홍콩에 145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무역 흑자 상대국 3위는 미국(120억달러)이다. 우리의 對중국 무역흑자가 對미국 흑자의 세배 가까이 되고, 홍콩까지 합치면 중화권을 상대로 한 흑자(488억달러)가 미국의 네배를 넘는다. (우리가 홍콩에 수출하는 제품은 상당부분 중국으로 재수출된다.)

작년 우리가 중국에 기록한 무역흑자는 535억달러, 홍콩에 기록한 무역흑자는 305억달러로 총 840억달러를 기록했다. 이 기간 대미 무역흑자는 151억달러에 불과했다. 2003년 이후 이러한 구조가 굳어졌다. 2001~2002년 미국-홍콩-중국 순이었던 우리의 무역흑자 상대국 순위가 2003년 이후엔 중국-홍콩-미국 순으로 굳어졌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엔 중국과 홍콩을 상대로 한 우리나라의 흑자폭이 급증하는 추세다. 중국의 성장률이 최근 둔화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對중국 무역지표는 아직 건실하다.

우리의 무역흑자 상대국에 아시아국가들이 많은 점도 눈에 띈다.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싱가포르(4위)와 베트남(5위), 인도(7위), 필리핀(9위)에 많은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그림설명:2012년 한국의 국가별 수출입 순위)



우리는 1990년대 후반 세계 경제 질서 재편의 흐름을 잘 탔다. 당시 중국은 세계 경제의 공장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한국과 대만에서 중간재를 수입하고 동남아시아에서 각종 자원을 가져와 단순 조립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 수출하는 체제를 만들어 냈다. 이 때 우리나라는 부가가치가 높은 중간재를 중국에 팔아 무역흑자를 남길 수 있었고 이러한 무역구조가 지금까지 지속돼 왔다. 2008년 이후 미국과 유럽의 경제위기에도 우리가 버틸 수 있는 힘의 밑바탕엔 중국과의 무역관계가 있었다.

흔히 우리나라의 대외 의존도를 말할때 이는 대미 의존도를 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를 대중 의존도로 바꿔야할지 모른다. 이러한 대중의존도는 이제까지 우리나라 무역에 행운을 가져다 줬으나 리스크를 안고 있는 측면도 있다.



◆중국은 신흥국 위기 전염 차단하는 방파제 = 2012년 현재 한국의 對중국 수출비중(약 25%)은 미국(10%)과 유럽(10%)을 합친 것보다 많다. 한국이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흑자가 많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이 위기에 빠져도 우리 경제기초를 떠받치는 경상수지와 외환보유액이 탄탄한 것이다. 현재 진행중인 신흥국 위기를 우리가 잘 견디는 비결도 중국 변수를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거두는 무역 흑자와 튼튼한 외환보유액이 있기 때문에 위기의 표적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인도와 인도네시아 위기의 방파제 역할을 한 셈이다.

앞으로 진행될 신흥국 위기도 이런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인도.인도네시아 위기가 한국으로 직접 전염될 가능성보다는 중국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국이 신흥국 위기 이후 불안국면에 빠진다면 그 여파가 보다 직접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이 경착륙에 빠진다거나 부동산거품과 그림자금융 문제가 발생할 경우 우리에겐 큰 리스크다. 중국이 무역부문에서 자국 이기주의의 정책을 편다면 우리의 무역흑자에도 이상신호가 올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위기를 맞는 중국 경제상황의 변화와 정책당국의 스탠스, 중국 지도부의 의중 등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출구전략과 맞물려 진행되는 신흥국의 위기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힘든 과정이 될 수 있다. 1994년 미국의 출구전략 이후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질때까지 약 4년의 시간이 걸렸다. 미국의 출구전략이 2013년 9월 시작된다고 본다면 아직 먼 길이 남아 있다. 우리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가졌는지 보기 위해선 중국의 경제상황과 우리와의 무역관계를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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