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성진 기자 = 일본의 D램 생산업체 엘피다가 정부 및 채권단과의 자금 지원 협상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일본 정부가 결국 지원에 나설 것이라거나, 미국의 마이크론 또는 대만의 난야테크놀로지와의 제휴를 통해 위기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 등이 나오고 있으나 기댈만한 '지원군'의 윤곽은 아직 잡히지 않고 있다.

16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엘피다는 오는 3월22일과 4월초에 150억엔(약 2천150억원)의 회사채와 770억엔(약 1조1천40억원)의 대출이 만기 도래하기 때문에 시급히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파산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엘피다의 지난 2일 기준 현금보유액은 500억~600억엔 수준으로 부채를 막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엘피다는 지난 3분기(작년 9~12월) 말까지만 해도 974억엔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지난달 24일 300억엔의 회사채를 상환하면서 현금이 대폭 줄었다.

엘피다는 지난 2일까지만 해도 정부 및 채권단과의 협상이 3월말 결실을 볼 것으로 예상했으나, 전날 협상이 난항에 부닥쳤다고 인정했다.

엘피다는 "계속기업으로서의 지속 여부가 상당히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사카모토 유키오 엘피다 사장은 자금 지원 협상에서 합의를 보더라도, 업계 경쟁자들을 따라잡기에는 여력이 부족한 상태라고 우려했다.

세계 3위권의 D램 생산업체인 엘피다가 파산 지경에 몰린 까닭은 D램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과 엔화 강세로 실적 부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엘피다의 지난 분기 매출은 598억엔으로 전년 동기보다 3분의 1 이상 감소했고, 순손실은 421억엔으로 12% 확대됐다. 5분기 연속 순손실 행진이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유일한 D램 기업이라는 엘피다의 상징성과 6천명에 이르는 직원들의 고용 보장을 위해 일본 정부가 결국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4월 초 만기 도래하는 770억엔의 대출 중 100억엔은 정부 산하 일본개발은행(DBJ)의 몫이기도 하다.

그러나 엘피다가 지속적으로 적자를 내온데다, 파산을 피하더라도 업계 1위와 2위인 삼성과 하이닉스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미즈호자산운용의 다카하시 아오키 매니저는 "도쿄전력이나 일본항공(JAL)은 일본 정부가 구제금융을 제공했지만, 엘피다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면서 "일본이 국가적으로 D램 생산업체를 가질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선진국은 D램 업체를 갖고 있지 않으며, 엘피다는 성장 가능성을 찾아보기도 어렵다"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엘피다가 업계 하위권의 경쟁자들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는 소문이 업계에서는 빠르게 퍼지고 있지만, 이마저도 녹록지는 않은 상황이다.

업계 4위로 꼽히는 마이크론은 지난 3일 스티브 애플턴 최고경영자(CEO)가 비행기 사고로 갑자기 사망해 방향타를 잃은 실정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는 부채를 기피하는 마이크론과 합병하려면 엘피다의 과도한 부채가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업계 5위인 대만의 난야 테크놀러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엘피다와 특허권 침해 소송 다툼을 벌이고 있어 엘피다와의 관계가 껄끄러운 상태다.

난야의 페이린 페이 부사장은 WSJ에 "엘피다와 재무적 지원에 관해서는 어떤 논의도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한편, 파산이 임박했다는 우려가 퍼지면서 엘피다의 주가는 전날 도쿄증시에서 장중 21% 폭락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10시27분 현재 엘피다의 주가는 전장보다 2.19% 상승한 327엔에 거래되고 있다.

sjkim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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