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월스트리트가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가 이뤄졌다. 로런스 서머스는 낙마했고 연방준비제도(Fed)는 출구전략의 시동을 미뤘기 때문이다. 껄끄럽게 여기던 두 가지 변수가 한꺼번에 사라진 셈이다.

연준은 19일(한국 시간) 열린 통화정책 회의에서 예상과 달리 양적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9월로 예정됐던 테이퍼링(양적완화의 점진적 축소)은 사실상 연말로 미뤄졌다. 어쩌면 미국의 출구전략은 벤 버냉키 의장의 후임자가 취임하고 나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버냉키의 후임으로는 재닛 옐런 연준 부의장이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서머스에 반대했던 민주당 상원 의원들이 옐런에 대해선 찬성하고 있고, 학계와 월스트리트도 그녀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옐런을 배제하고 서머스를 밀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된다. 인사 문제에서 밀리기 시작하면 집권 2기는 험난할 수밖에 없다. 옐런이 아닌 제3의 후보를 오바마가 선택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버냉키의 연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 정가의 파워게임에서 월스트리트는 어부지리를 얻었다. 백악관과 민주당 리버럴(진보주의자)의 대립과정에서 서머스가 낙마하게 됐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서머스가 월가의 개혁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서머스는 잘 알려졌듯이 클린턴 인맥이다. 클린턴쪽 인사들은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을 필두로 월스트리트와 친숙한 관계를 맺고 있다. 좌우의 개념을 따지자면 리버럴은 좌, 클린턴쪽은 우다. 민주당 리버럴들은 클린턴 인맥에 둘러싸여 오바마가 월스트리트 개혁을 머뭇거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최근 사퇴의사를 표명한 진 스펄링 백악관 국가경제회의(NEC) 의장 역시 클린턴쪽 인사다. 스펄링의 사퇴와 서머스의 낙마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당·청 관계의 균열로 설명할 수 있다.

연준 의장의 인준을 담당하는 상원 은행위원회는 민주당 12명, 공화당 10명으로 구성돼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민주당 리버럴을 비롯해 5명의 의원들이 서머스 인준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백악관에 통보했다. 이렇게 되면 오바마는 5표를 가져오기 위해 공화당 상원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리아 공습 문제와 재정협상, 오바마케어 등에서 공화당쪽에 양보를 해야 한다. 그러나 백악관 참모들이 이 방안을 반대했다. 집권 2기 초반부터 정국 주도권을 의회에 빼앗기기 때문이다. 집권당인 민주당의 외면과 공화당의 공격에 백악관이 집권 초기부터 레임덕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는 지적이다.

정가의 파워게임에서 친월가로 분류되는 서머스가 낙마했으나 월가가 가장 선호하는 옐런이 후임 의장에 유력하게 거론된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역으로 월가 입장에서는 행운이다. 월가는 서머스가 연준 의장이 되면 출구전략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점에서 서머스를 반대해왔다. 달러 강세.주가폭락 등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혼돈에 빠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옐런은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인물로 버냉키와 비슷한 성향을 가졌다는 점에서 월가가 선호하는 인물이다. 서머스 낙마와 관련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22일 CNN 인터뷰에서 옐런 지지 의사를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주 중으로 새로운 연준 의장을 지명할 것으로 선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손끝에 세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할 경제대통령이 결정된다.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옐런이 그의 부름을 받을지 주목된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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