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경제'는 '정치'의 '시다바리'인가.

이 오래된 사회과학적 질문에 대해 작금의 미국과 관련해서 대답은 '그렇다'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간의 정쟁 속에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으면서 미국은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직면했다.

마르크스는 그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생산관계인 경제를 '하부구조'로 보고, 현실적 토대 위에서 성립되는 정치·법제 또는 이데올로기를 '상부구조'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에 의해 제약·규정되지만 반대로 상부구조가 하부구조에 반작용하는 때도 잦다는 것을 관찰했다.

현대의 정치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영역이 아니며, 정의와 불의가 명쾌하게 구분되지 않는 곳이다. 오직 명분과 권력과 영향력을 다투는 전장일 뿐이다. 숫자와 이익만을 분석하는 월가의 시장전문가들이 당혹스러워하는 지점이다.

겉으로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의료보장과 중산층 보호프로그램을 놓고 정부예산 심의를 승강이하는 모습이지만, 속내를 보면 어느 쪽이든 '밀리면 존재감은 사라지고 죽는다'는 권력 투쟁이 배경에 있다.

오바마는 집권 1기 때보다 선거에서 자유롭고 정치적으로 잃을 것도 없어 공화당에 어느 때보다 초강수를 두고 있다. 반면 공화당은 지난 1차 재정협상 때 '땜질식 타협'을 했다가 부자 증세만 시켜주고 얻은 게 없다는 비판을 받은 탓에 이번엔 벼랑 끝에서 물러설 수 없다.

양쪽 모두 `공포 분위기 조성 전술(scare tactic)' 속에서, `재깍거리는 시한폭탄(ticking time bomb)' 앞에서 누가 먼저 겁먹고 눈을 깜빡이냐의 싸움인 형국이다.

시장 분석가들은 현재의 '셧다운(예산승인보류)'이 지속하여 재정채무 한도 소진과 만나는 10월17일을 넘기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되지 않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하지만, 정치권의 무책임과 '사보타주' 상황이 벌어질 공산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다 보니 경제계 일각에서는 국가부도를 피하려면 미국 재무부가 초고액인 1조 달러짜리 백금 동전을 발행해 연방준비제도(Fed)에 예치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는 고육책도 내놓고 있다.

'하부구조'들의 이런 우스꽝스러운(loop hole) 해법 제시는 '상부구조'인 정치인에게는 더는 기대할 게 없으니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기도 하다. Fed도 반대하고, 백악관까지 초고액 동전 찍는 걸 나서서 부인했지만, 해괴한 묘수가 나돌 정도로 지금 미국의 정쟁은 유례없는 국면이다.

재정 부채 한도 초과와 정부 지출 자동삭감으로 디폴트까지는 안 가더라도 신용 등급 강등과 경기 급강하가 불가피해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잡아먹을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민주주의 종주국에서도 정치가 경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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