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애틀랜타=연합인포맥스) 10일(미국 현지시간) 워싱턴 D.C.의 로널드 레이건 공항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10월 초만 해도 30도를 오르내리던 워싱턴 날씨는 미국 정부의 암울한 미래를 상징하듯 을씨년스러웠다. 비행기 안에서 워싱턴 D.C.를 내려다봤으나 워싱턴의 명소인 캐피털 힐(국회의사당)은 먹구름에 가려 찾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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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로 미국 정부의 셧다운(부분 업무 정지)은 열흘째를 맞았다. 연방정부 공무원은 무급휴가에 들어갔고 관광명소는 모두 문을 닫았다. 곳곳에 'CLOSED'라는 푯말만 보였고 인적은 뜸했다. 관리인도 관광객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념품 가게엔 쓰레기 더미만 쌓여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가던 한 미국 관광객은 "정부도 셧다운했고 쓰레기도 셧다운했다"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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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가 열린 19번가-G스트리트엔 사람들이 제법 보였으나 그 외의 워싱턴 거리는 적막한 풍경을 연출했다. 연방준비제도(Fed) 앞 도로도 한산했다. 연준 경비원은 "평소 연준 근처에는 100여 명 정도의 행인이 지나다녔는데, 오늘은 셧다운인데다 비까지 내려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개점휴업한 워싱턴의 관광 명소에 유독 중국 관광객들이 많았다. 백악관 앞에도 단체관광을 온 중국 관광객들 뿐이었다. 링컨기념관에도 마찬가지였다. 높아진 중국의 소득수준과 국가위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들은 단체로 버스를 전세 내 워싱턴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이들은 이번 미국 관광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베이징에서 여행 온 한 중국인 여성은 "실망스럽다. 서부 옐로스톤부터 동부 워싱턴까지 미국을 쭉 돌았는데 셧다운 때문에 제대로 본 게 없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정부는 일부 국립공원 등 관광지를 부분적으로 개장한다고 했으나 관광객들이 많이 늘어날지는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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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현지에서 만난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의 미래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랑거리인 정치시스템이 사실상 무기력해졌기 때문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실종되고 독선과 고집의 정치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워싱턴에 근거를 둔 제조업협회(MAPI) 제임스 엥겔하트 미디어담당관은 "셧다운은 어쩌면 시스템 리스크일지도 모른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화는 하지만 소통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같은 연구소의 클리프 왈드만 연구원은 "과거에도 셧다운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엔 다르다. 미국의 정치시스템이 문제다"라고 말했다.

셧다운의 핵심 쟁점은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안)'다. 전 국민에게 의료보험혜택을 주려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을 공화당이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번 셧다운으로 미국은 둘로 쪼개졌다. 링컨기념관 앞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을 탄핵(impeach)하자는 소수 젊은이들의 시위가 벌어졌고, 워싱턴 내셔널스파크 근방에서는 공화당을 비판하는 시위가 있었다. 워싱턴 D.C.를 감싸는 벨트웨이(순환고속도로)에서는 콘테이너 차량 운전기사들이 서행 시위를 벌였다. 셧다운을 불러온 정치권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들 사이엔 이들의 시위를 지지하는 표어도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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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판하고 진보는 공화당의 대통령 발목잡기가 지나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류인 백인들은 내 돈을 더 내서 보편적 복지를 하는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나 미국에서 자리잡지 못한 비주류들은 천문학적인 의료비용이 낮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씽크탱크들도 각자 입장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냈다. 진보계열인 브루킹스연구소 마크 무로 연구원은 "공화당에서 반대 여론을 주도하는(unwillingness to compromise) 일부 의원이 문제"라고 했으나 보수 계열의 헤리티지재단의 브라이언 릴리는 "탱고는 혼자 출수 없다"며 공화당과 오바마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했다.

정치가 경제와 외교의 발목을 잡는 게 요즘 미국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제조업계에서는 셧다운과 부채증액 협상 등 정치불확실성 과정에 관망하려는 심리가 강했다. 기아차 조지아 공장의 스튜어트 카운티스 부사장은 "셧다운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는 있지만 당분간 투자결정을 보류할 수 밖에 없고, 관망(wait-and-see)하는 모드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셧다운 때문에 동남아시아 방문 일정을 취소했다. 그 사이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동남아를 돌며 포용외교를 했다. 아시아 태평양에서 위상이 약화되는 미국에겐 치명적인 일이다.

미국 정치의 현주소는 우리에게 시사점이 많다. 보수와 진보가 타협하지 않는 정치는 국가를 병들게 한다. 이념에 매몰돼 경제와 외교를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최근 아.태지역은 미국과 중국, 일본의 세력구도가 재편되며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을 지원하며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과 가깝고 외교적 측면에서 미국과 가까운 우리에겐 곤혹스러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밖의 변화를 주시하며 대외적 환경 변화에 대비해야한다.

(국제경제부장)

jang7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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