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성진 기자 = 유로존 위기로 몸살을 앓는 유럽의 대형은행들이 지난해 세계 중앙은행들에 맡긴 예치금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 보도했다.

WSJ가 최근 지난해 연간 실적을 발표한 8개 유럽 대형은행의 보고자료를 토대로 계산한 바로는, 지난해 말 이 은행들의 중앙은행 예치금은 8천160억(약 916조원)달러였다.

1년 전의 5천430억달러보다 50.3%나 급증한 수치다.

유럽의 주요 은행들은 유동성 완충장치를 쌓아두라는 금융당국의 주문과 대출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중앙은행 예치금을 늘렸다고 저널은 설명했다.

WSJ에 따르면 유로존 위기가 심화하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곳으로 꼽혔던 프랑스 은행권의 중앙은행 예치금 증가폭이 가장 컸다.

프랑스 2위 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은 중앙은행 예치금을 440억유로로 세 배 이상 늘렸다.

프랑스 최대은행 BNP파리바의 중앙은행 예치금은 580억유로로 74% 증가했다.

BNP파리바는 전체 예치금의 절반 이상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 맡겼으며, 나머지는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 등에 분산 예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BNP파리바의 장 로렌 보나페 최고경영자(CEO)는 지난주 WSJ에 "지난해 하반기에 거대한 위기가 닥치면서 최대한 빨리 자금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했다"고 말했다.

스페인의 1위와 2위 은행인 방코 산탄데르와 방코 빌바오 비즈카야 아르헨타리아(BBVA), 스위스의 UBS와 크레디트스위스, 독일 도이치방크, 영국 바클레이즈 등 WSJ의 조사 대상에 포함된 다른 여섯 개 은행도 모두 2010년보다 중앙은행 예치금이 증가했다.

은행들이 중앙은행 예치금을 밝힌 것은 지난해 은행들의 유동성 보유 현황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나서부터이기 때문에, 과거 현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저널은 설명했다.

런던 소재 메디오방카의 안드레아 필트리 은행 애널리스트는 "유럽 은행권이 세계 중앙은행들에 예치한 유동성은 적어도 15년만의 최고치일 것"이라면서 "금융당국이 유동성 위기를 피하고자 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에 위기에 대비해 유동성 완충장치를 확보하라고 채근한 결과라는 것이다.

또 유럽 국채시장의 불안이 증가하면서 국채 투자자금이 중앙은행 예치금으로 쏠리고, 지난해 유럽중앙은행(ECB)의 장기 유동성 공급 조치(LTRO)로 은행들의 유동성이 풍부해진 영향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WSJ는 그러나 유럽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 예치금은 지난해 내내 증가세를 보였고, 특히 유로존 위기가 고조되던 3분기에 크게 증가했다는 점에서 유로존 금융권의 긴장이 높아진 영향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ECB의 LTRO를 이용하지 않은 도이치방크의 중앙은행 예치금은 지난해 3분기말 940억유로에서 지난해 말에는 1천360억유로로 한 분기만에 44.7%나 증가했다.

도이치방크는 2010년과 지난해 초까지는 약 700억유로를 중앙은행에 예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WSJ는 추정했다.

조지프 애커만 도이치방크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초 "도이치방크가 확보한 유동성은 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일부 유럽 은행은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지시 때문에 예치금을 늘렸다.

스페인 최대은행 산탄데르는 영국과 브라질에서 유동성 규제 기준이 강화되자 예치금을 970억유로로 2010년 6월보다 58% 늘렸다.

스페인 2위 BBVA의 지난해 말 예치금은 310억유로로 1년 전보다 55% 증가했다.

중앙은행 예치금을 늘리는 것은 은행들이 위기에 대응하는 대비책이 될 수 있지만, 경제 전반에 대한 대출을 줄여 유럽 전역의 돈줄을 마르게 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저널은 지적했다.

또 중앙은행 예치금 이자는 미미한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은행들의 수익성도 훼손될 수 있다.

BBVA가 지난해 4분기 중앙은행 예치금에서 거둔 평균 수익률은 0.99%로, 전체 자산 수익률 4.41%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BNP파리바의 보나페 CEO는 "시장이 안정되기만 하면 현재 수준의 완충 유동성을 쌓을 필요는 없다"면서 "위험에 대한 대비와 비용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sjkim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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