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워싱턴=연합인포맥스) 이장원 기자 = 애플의 창업주 故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미국에 애플 공장을 설립하는 것을 두고 고민했다.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와 잡스는 비밀리에 만났다. 중국에 있는 애플 공장을 캘리포니아로 옮겨올 수 있느냐를 놓고 오바마와 잡스는 협상을 벌였다. 4년 뒤인 작년 12월 애플은 맥컴퓨터(PC) 생산라인을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잡스를 만나 협상한 오바마의 모습은 미국이 제조업 부활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취임 후 '리메이킹 어메리카(Remaking America)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제조업 부활정책의 드라이브를 걸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1년 뒤인 2010년 연두교서에서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기업체에 세제혜택과 현금지원, 저금리 대출 등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이러한 정책적 지원은 미국 제조업체의 리쇼어링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리쇼어링을 통한 미국 제조업의 부활은 정부와 산업계, 학교가 합심해 만든 작품이다. 오바마는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고 학교에선 첨단기술을 연구해 미래 먹을거리를 찾고 있으며 산업체들은 이를 뒤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연방정부 뿐만 아니라 주 정부도 각자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조지아주와 미시시피주, 앨라배마주 등 미국 남부 주들은 기업체들을 하나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예컨대 기아차가 미국에 공장설립을 추진할 때 남부의 각 주들이 앞다퉈 좋은 혜택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바마의 의지' 월가는 누르고 제조업은 지원한다 = 집권 1기에 이어 집권 2기에 들어선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은 허약해진 제조업을 지원하고 비대해진 월스트리트엔 제약을 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국에 위기를 불러온 근본 요인이 금융의 탐욕이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대 이후 미국 경제의 체질은 제조업에서 금융과 서비스업으로 바뀌었다. 그후 30년간 제조업은 미국 밖으로 빠져나가고(offshoring) 월스트리트 중심의 금융과 유통, 서비스업종으로 미국 경제가 재편됐다. 일자리는 만들지 못하고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등 쌍둥이 적자를 만들어내며 미국 경제에 불균형이 생겼고 몸의 근간을 이루는 뼈대가 사라진 미국 경제는 결국 2008년에 최악의 금융위기를 맞고 만다.

미국 경제를 재건하라는 시대적 과제 안고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는 도드-프랭크 법을 만들어 월스트리트의 탐욕에 제약을 가하고, 제조업에는 각종 혜택을 부여해 육성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마크 뮤로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미국 정부는 월가의 규율을 재정립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경제구조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직접적으로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2기 행정부에서도 이러한 정책 틀은 그대로 유지됐다. 오바마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법인세 인하를 공약했다. 법인세율을 35%에서 28%로 내리고, 특히 제조업에 대한 법인세는 25%로 낮춘다는 게 골자다. 미국 재정이 부족한 상황임에도 세율을 인하해 적극적으로 제조업 육성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 정부의 목표는 경제구조에서 금융의 기여도를 낮추고 제조업의 기여도를 높여 건전한 시스템을 만들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금융에서 탐욕을 제거해 건전한 금융업을 만들고 제조업체와 같이 손잡고 갈 수 있는 그림을 그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들어와야 지역경제가 산다 = 과거 자동차산업의 중심지 디트로이트가 몰락한 것은 기업체가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기업이 있어야 고용이 창출되고 그 안에서 정부를 이끌 세금이 나오는 것인데, 디트로이트에서는 기업체가 사라지면서 이 고리가 완전히 끊어졌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디트로이트의 사례는 미국 각 지자체에 중요한 교훈이 되고 있다.

이런 까닭에 미국 제조업과 기업을 살리는데 미국의 주 정부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조지아와 미시시피, 앨라배마 등 남부 주들이 적극적이다.

조지아 주는 1985년 개소한 서울 사무소가 한국 기업들을 유치하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조지아 주는 한국 말고도 베이징과 멕시코 등 11개국에 사무소를 두고 적극적인 세일즈 외교에 나서고 있다. 조지아주는 에너지세를 줄여주는 세제혜택과 각종 인센티브, 교육훈련을 제공하는 퀵스타트(Georgia Quick Start) 프로그램을 가지고 제조업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조지아주에 있는 기아차 미국 법인의 스튜어트 카운티스 부사장은 "얼마 전에 조지아 주에서 제조업체들에 에너지 비용을 감면해주는 정책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앞으로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게 됐다. 조지아주는 더 많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지아 주를 대표하는 공대인 조지아텍에서는 3D 프린터 연구가 한창이다. 3D 프린터는 서비스중심인 미국 경제의 체질을 제조업 중심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벤처기업이 나오고 3D 프린터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 생태계를 구축하면 첨단 제조업 기반의 경제 구조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설명:조지아텍의 인벤션 스튜디오와 3D프린터의 모습>



조지아텍의 3D 프린터 연구소(Invention Studio)는 산학협동의 모델이 잘 구현돼 있다. 이 연구소에는 각종 기업체의 후원이 답지하고 있다. 코카콜라와 델타항공 등 조지아주에 본사를 기업은 물론, 제너럴모터스(GM)와 롤스로이스, 조지아 파워(발전소) 등 많은 기업들이 후원하고 있다. 제조업체의 자본과 대학의 두뇌가 만나 첨단기술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그림설명:조지아텍 인벤션 스튜디오를 후원하는 기업체 로고>



최근 조지아텍에서는 흥미로운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대항하는 '노 밸리(No Valley)'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조지아텍의 스티븐 플레밍 박사는 "실리콘밸리와는 다른 형태의 첨단기술 산업단지를 애틀랜타에서도 개발하자는 취지에서 벌이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미국 남부에도 또 하나의 실리콘밸리를 만들어 벤처와 제조업을 일으키자는 숨은 뜻이 담겨 있다.


jang73@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