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ㆍ워싱턴=연합인포맥스) 이장원 기자 = 전통적으로 미국 남부는 농업중심지다. 건국 초기부터 노예무역을 통해 노동력을 공급받아 담배와 면화 등 플랜테이션 농업을 해왔다. 애틀랜타가 있는 조지아주는 유명한 복숭아 재배지였다. 현지에서 만난 조지아 주 정부 관계자들의 명함에는 복숭아를 형상화한 조지아주의 상징물이 그려져 있었다.

농업중심지였던 미국 남부가 공업중심지로 변모하고 있다. 한국과 독일, 일본 등 굴지의 자동차 업체들이 남부에 공장을 만들어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전초기지로 삼고 있다. 보잉(조지아주)과 에어버스(앨라배마주) 등 항공기 제작업체들도 남부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공대인 조지아텍에서는 미래의 먹을거리인 3D 프린터를 연구하고 있다.



◆미국판 리쇼어링 5년 이상 지속 가능성 = 미국의 리쇼어링(Reshoring)을 말할 때 남부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남부는 미국 제조업 부활을 대표하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앨라배마와 조지아, 미시시피, 테네시 등 남부의 각 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변신을 추진하고 있다. 제조업을 유치하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해 기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풍부한 노동력과 낮은 에너지 가격 등은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어 기업들의 구미를 당긴다.

21세기 산업에서 국적은 의미가 없다. 소비가 일어나는 곳에 생산거점을 마련하고, 현지 기업화(Localization)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다. 리쇼어링의 본래 의미는 미국을 탈출한 제조업이 미국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나, 좀 더 범위를 확장하자면 전 세계 제조업체들이 미국에 모이는 현상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마크 무로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원은 "리쇼어링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며 앞으로 5년간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진출한 현대·기아차는 각종 홍보수단을 활용해 현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최대의 스포츠축제인 슈퍼볼에 거액의 예산을 들여 광고하는 것은 물론 앨라배마와 조지아 지역 곳곳에서도 많은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예컨대 조지아텍 내부에 있는 미식축구 경기장에서도 현대차의 광고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림설명:조지아텍 풋볼경기장에 있는 현대자동차 광고판>



이런 까닭에 현대차와 기아차는 한국이 국적이지만, 현지에선 미국 기업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미국에서 차를 만들었으니 미국 차라는 생각을 갖는 미국인도 많다. 미국 소비자들이 현대.기아차라는 브랜드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 이유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리쇼어링의 본질 = 리쇼어링은 수요가 있는 곳에서 일어난다는 특징이 있다. 중국에 과자를 팔기 위해선 중국에 공장을 지어야 하듯이 미국에 자동차를 팔려면 미국에 공장을 지어야 한다.

新자동차의 메카로 등장한 미국 남부는 리쇼어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 시장을 노리는 외국 자동차 업체들은 남부에 자동차 클러스터를 만들고 있다. 자동차의 대명사 북부 디트로이트는 이제 파산과 함께 잊혀진 도시가 됐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미국에 공장을 세우는 건 '수요가 있는 곳에서 직접 만들어 공급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저임금 국가에서 부품을 조립해 만든 차를 수출하는 건 20세기 패러다임이다. 21세기 제조업은 수요처에 공장을 만들어 부품을 직접 생산하고 조립해 파는 패러다임으로 변했다. 유통과 운송, 전력 등 비용측면에서 비효율적인 부분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기아차 미국 법인의 스튜어트 카운티스 부사장은 "지리적인 위치가 좋았던 점이 기아차 조지아 공장의 성공요인"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업체들은 현지에 진출할 때 단신으로 오지 않는다. 부품공장을 끼고 같이 입성하는 경우가 많다. 앨라배마와 조지아에 공장을 만든 현대.기아차의 경우 한국 협력업체 29개사와 미국 업체 76개 등 총 105개사가 입지해 자동차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생산성 및 혁신을 위한 제조업체연합(MAPI)의 클리프 월드맨 위원장은 "리쇼어링은 시장이 있는 곳, 수요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이라며 "제조업체는 함께 모이는 특징이 있고 거리의 근접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리를 이루는 곳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제조업 재편…새로운 패러다임의 형성 = 세계 제조업계는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에서 값싼 제품을 생산해 선진국에 물품을 대던 구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경제발전과 함께 고임금.고물가를 겪고 있어 더이상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지 못한다. 중국에서 빠져나가는 공장들은 일부 미국으로 이전하고, 일부는 저임금 생산국가로 이전한다.

미국의 제조업은 첨단 IT산업을 중심으로 한 고부가가치 산업을 중심으로 커가고 있다. 시장 규모가 큰 자동차와 항공, 기계같은 산업도 미국에서 성장의 여지가 많은 제조업이다. 그 과정에서 리쇼어링도 발생한다.

앞으로 3D 프린터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중심으로 미국의 제조업이 번창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했던 세계의 공장 역할은 미얀마와 베트남 등 PC(Post China) 16개국으로 이동할 전망이다. 중국은 그 중간지대에 있는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을 꾀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력을 기준으로 미국은 최첨단 산업 중심의 성장, 중국은 중간단계의 기술력을 가진 산업의 성장, PC16국은 단순 조립 생산의 역할로 세계 제조업이 재편될 것으로 관측된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무로 연구원은 "미국은 대량생산보다 고도로 발전된 제조업을 육성하려 한다"며 "미국이 경쟁력을 보이는 부분은 소프트웨어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지고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경쟁력 우위를 지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설명:조지아텍 연구소에서 3D 프린터로 모형을 찍어내는 모습>


jang7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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