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현대차그룹 계열 상장사들이 한국거래소로부터 일제히 동양생명 인수설에 대한 조회공시를 받고 '인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답변을 내놓는 촌극이 벌어졌다.

한국거래소가 현대차그룹 상장사 모두에 조회공시를 요구한 것은 지난해 현대차가 녹십자생명 인수설에 대한 조회공시에 부인했으나, 결국 그룹내 다른 계열사들이 인수 주체로 나서면서 논란이 일었던 전력이 있어서다.

현대모비스가 20일 부인 공시를 낸데 이어 21일에는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 현대하이스코, 현대건설, 현대비앤지스틸 등이 동양생명 인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공시를 통해 밝혔다.

IB 등 M&A 업계에서도 현대차그룹이 동양생명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정황이 없다고 보고 있어 현대차그룹의 인수설은 일단 해프닝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의 비상장 계열사를 통해 인수를 추진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현대차그룹 상장사들이 부인 공시를 했더라도 상황은 변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는 전일 그룹의 대표 계열사인 현대차가 아닌 현대모비스에, 그것도 현대차그룹의 인수 추진을 답변하도록 했다.

그러나 현대모비스는 부인 공시를 내면서 그룹 차원이나 다른 계열사가 추진한 사안까지 답변할 수는 없다고 거래소 측에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현대차그룹의 계열 상장사 모두에 인수설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이는 지난해 8월 말 현대차가 '녹십자생명 인수를 검토한 바 없다'고 공시했다가 50여일 만에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커머셜 등이 녹십자생명 지분 93.6%를 인수한 점을 고려한 조치다.

거래소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 30조와 상법 등에 따르면 '인수합병 관련 조회공시에 대해 부인한 뒤 3개월 이내에 이를 전면취소나 부인, 또는 이에 준하는 내용을 공시한 때는 공시 번복으로 본다'고 명시돼 있다

현대차는 당시 그룹차원에서 추진하는 일까지 알 수 없다며 부인 공시의 이유를 밝혔다. 결국,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시 위반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요 계열사가 참여하고 녹십자생명 인수 보도가 수개월 전부터 일부 나왔다는 점에서 그룹의 대표인 현대차가 꼼수를 부렸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비밀리에 추진하는 인수 작업이 미리 알려지면 가격만 높아질 부담을 안을 수 있다. 매각 측이 공시로 밝힌 이상 딜을 성사시키려는 인수 측의 입장을 최대한 이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수하려는 측은 최종 인수 사인만 남겨둔 시점에도 '확정된 바 없다'고 하기 일쑤다. 시장 참가자들은 미확정 공시를 아예 사실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거래소도 일부 코스닥 기업들이 M&A 등의 이벤트를 주가 띄우기 작전으로 악용한 사례가 있어 규정을 어느 범위까지 상세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다.

보도와 소문에 대해 답변을 너무 자주 요구하면 기업 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기업 경영 활동에 가장 중요한 행위인 M&A가 일단 알려지면 투자자에게 솔직히 밝힐 의무가 있다는 게 시장의 반응이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부도설과 같이 좋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 현대차그룹처럼 큰 기업집단에 이렇게 M&A에 대해 대대적으로 조회공시를 요구한 경우도 거의 없을 것"이라며 "한번 불신이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밀고 당겨야 하는 인수 협상에서 공시로 의지를 밝힐 수 없는 기업의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일단 구체적인 팩트를 담아 알려지면 그룹 차원에서도 대표로 공시하는 상장사를 통해 투자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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