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김영민 한진해운 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유동성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국내 금융권의 도움이 절실한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 사장은 11일 간부회의에서 "경영실적 부진과 영구채권 발행 지체 등으로 재무구조가 개선되지 못한데 대해 오랜 고민끝에 사의하기로 했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한진그룹 또는 채권단 등 외부의 압력은 결코 없었으며 스스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에 긴급 자금을 지원하면서 대규모 인력을 보내 고강도 재무상황 점검에 나선 것과 연관성이 없다는 점을 부인한 셈이다.

한진해운은 한진그룹 등의 사퇴 압박 제기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경영실적 부진 등의 이유로 스스로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30일 한진해운홀딩스가 보유한 한진해운 주식 38.08% 중 15.36%(1천920만여주)를 담보로 잡고, 한진해운에 1천500억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이후 대한항공은 이례적으로 10여명의 재무팀 인력을 한진해운에 보내 약 3주간의 일정으로 현금흐름 등 재무상태와 함께 전반적인 경영상황을 강도 높게 점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은영 회장이 김 사장의 사의를 즉각적으로 수용키로 한데는 현 상황을 타개하려는 사정이 있을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과 국내 시중은행들로부터의 유동성 지원을 끌어내려고 김 사장 사퇴 카드를 꺼내든 것이란 시각이다.

김 사장은 1981년부터 2001년까지 씨티은행에서 뱅커로 일해 온 전문 금융인 출신이다.

특히 선박금융 업무에 강점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한진해운에 영입된 것도 이러한 인연 때문이다.

한진해운 관리본부장과 총괄부사장을 거쳐 2009년부터 대표이사 사장에 오르기까지 김 사장의 금융 경험은 승승장구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국내 은행권은 김 사장의 이러한 이력과 배경에 불편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국내 은행의 한 관계자는 "한진해운은 경기가 좋을 때는 주로 외국계 은행들과 거래를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국계 은행들이 선박금융 등에서 저리로 자금을 대주고김 사장도 외국계 은행 출신이다 보니 서로 잘 맞는 게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업황이 나빠지고 실적과 재무상황이 악화해 유동성 어려움을 겪자 국내 은행권에 손을 벌리기 시작한 것 같은데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덧붙였다.

그간 선박금융 등을 통해 자금을 공급해 온 외국계 은행들이 한진해운의 유동성 악화를 틈타 원리금 상환 압박에 나서자 국내 은행들에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한진해운은 약 2조8천억원에 이르는 단기차입금 가운데 절반이 넘는 1조5천억원에 달하는 선박금융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해운업황 침체가 장기화 해 수익성이 악화하고 선박 공급 과잉이 지속된 상황에서도 대규모로 선박을 발주하는 등 공격적 투자에 나섰던 게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대부분이 외국계 은행에서 지원을 받은 것인데 상환 기간 등의 연장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진해운은 산은 등 정책금융기관과 시중 은행들의 유동성 공급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진해운은 작년부터 자본확충과 유동성 개선을 위해 영구채권 발행을 추진중인데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일부 시중 은행들이 보증 지원에 난색을 보이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금융당국이 나서 영구채권 발행 지원을 위한 조율에 나섰지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한진해운의 자기자본은 2011년과 2012년 대규모 당기순손실을 내면서 2조7천억원에서 1조3조원으로 반토막났다. 자본확충 효과가 있는 영구채권 발행에 사활을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본이 줄면서 재무지표는 악화해 올해 6월말 기준 별도기준 부채비율은 775%에 달했다. 차입금의존도는 77.1%에 이른다.

한진그룹이 추가로 한진해운에 유동성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지만 자금을 댈 수 있는 대한항공의 사정도 좋지많은 않아 불투명하다.

결국 국내 은행들이 나서 자금 지원에 나서야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일단 급한 불을 끄기 위해 3∼6개월 만기의 브리지론 형태로 단기 자금을 지원하려는 논의가 있으나 이후 추가로 유동성을 공급할 지 여부는 한진해운이 강력한 자구계획안을 제시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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