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진우 기자 = 한국전력 계열의 발전자회사들 '갑(甲)' 행태에 증권사 회사채 발행 실무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회사채 입찰을 마친 뒤에도 암암리에 증권사간 경쟁을 유도하면서 금리를 확 내리는 관행 때문이다.

엄연히 불공정거래에 해당되는 것을 알면서도 '을(乙)'의 위치에 있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발전자회사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는 처지다.

수요예측을 피하기 위해 일괄신고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발전자회사들이 거래상 지위를 이용해 금리 왜곡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들이 잇따르고 있다.

14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지난 12일 발행된 한국남동발전의 회사채는 같은날 유통시장에서 3년물이 3.246%, 10년물은 3.83%의 금리에 거래됐다.

발행금리는 3년물이 3.176%, 10년물이 3.81%였다. 만기별로 금리가 각각 7bp와 2bp 올라 팔린 것이다.

증권사들은 회사채를 인수해 주면서 수수료로 발행 총액의 20bp를 받았는데 사실상 '수수료 녹이기'를 통해 매출이 된 셈이다.

이 회사는 지난 7일 3년물과 10년물 1천억원씩 총 2천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고자 주요 증권사를 상대로 입찰을 실시했다.

일괄신고서를 제출하고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이어서 수요예측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입찰을 실시한 것이다.

입찰 마감시간은 오후 2시. 통상의 경우 마감시간까지 들어온 제안서를 토대로 금리를 결정하고 물량을 배정해야 한다.

하지만 회사측은 마감 시간을 넘겨 몇몇 증권사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마감 전 제안서를 낸 증권사가 제시한 금리를 알려주면서 금리를 더 낮춰추면 물량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행태에 불만을 보인 한 증권사는 인수를 포기했다. 결국 남동발전은 10년물을 목표액보다 100억원 줄어든 900억원만 발행했다.

문제는 이 회사 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전 계열 발전자회사들이 동일한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대표주관사를 줄테니 금리를 낮춰달라는 요구는 기본이고, 입찰일을 제때 지키지 않고 연기하는 경우도 허다한 것으로 증권가에서는 알려져 있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발전자회사들이 수요예측을 피해 일괄신고제를 도입하면서 이런 현상이 더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괄신고제는 1년 이내에 발행할 회사채 규모를 금융당국에 신고하고서 3회 이상에 걸쳐 원하는 시기에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수요예측을 실시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투자 수요를 고려해 주관사와 협의를 통해 금리를 확정ㆍ조정한다.

발행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발전자회사들은 그럴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발전 자회사의 한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공공기관 경영실태 감사를 받아야 해서 가급적 금리를 낮춰 발행해야 하는 고충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증권업계가 최근 실적이 악화하고 있다는 측면을 고려하면 이들의 행태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jwcho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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