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앨런 그린스펀은 모호했다. 벤 버냉키는 솔직했다. 그리고 재닛 옐런은 명확했다. 모호함과 솔직함, 명확함. 연방준비제도(Fed) 리더의 스타일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이와 같을 것이다. 18년이나 연준을 이끈 그린스펀은 모호한 메시지를 던져 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적이 많았다. 그는 어려운 말을 구사해 시장에서 이를 해석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게 했고, 그 과정에서 시장이 자정작용을 거치도록 하는 방법을 즐겨썼다. 그의 재임시기 연준의 통화정책 성명엔 일반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말도 곧잘 들어갔다. 그러면 시장은 그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허둥지둥댔다. 그린스펀은 이런 모호함을 이용해 시장과의 대결에서 항상 주도권을 쥐었다.

버냉키는 그린스펀의 모호함에 비판적이었다. 통화정책의 내용과 과정은 시장에 공개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까닭에 버냉키 의장 시절에 연준은 시장과의 '소통'에 방점을 뒀다. 통화정책 성명은 알기쉽게 요약했고, 정책의 가이드라인을 미리 제시해서 시장이 대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버냉키가 퇴임을 1년 앞두고 3단계 출구전략 로드맵을 발표한 것도 소통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테이퍼링(점진적인 양적완화 축소)에 대해서도 버냉키는 솔직하게 정책당국의 속내를 공개했다.

그린스펀과 버냉키 등 전임자들과 비교할 때 재닛 옐런은 명확함이 돋보인다. 그는 세련된 논리와 신중한 언어선택을 통해 원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던지는 스타일이다. 그러한 소통방식은 시장에 '안정'을 가져다 준다. 연준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전문성과 노련함을 바탕으로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꼼꼼함이 가미된 지도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연준 내정자 신분인 재닛 옐런은 지난 주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송곳 질문을 슬기롭게 헤쳐나갔다. 금융시장은 그의 발언에 안심했고 전문가들도 후한 평가를 내렸다. '옐런 스타일', '옐런 효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그는 전임자인 벤 버냉키 의장의 뒤를 무리없이 승계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문회에서 확인된 옐런의 내공은 기대이상이었다. 가장 '핫한' 이슈인 양적완화 축소에 대해 그는 시장에 혼란을 주지 않도록 정교하게 계산된 말을 했다. 옐런의 말 중에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양적완화 축소에 너무 일찍 나서거나 지나치게 늦게 시작하는 것 모두 위험하다"고 한 대목이다. 그는 적절히 양다리를 걸쳐 지금은 테이퍼링을 할 때가 아니라는 점을 시장에 분명히 인지시켰고, 테이퍼링은 그 뒤에 반드시 한다는 신호도 분명히 전달했다.

청문회에서 나타난 옐런의 대응을 보면 연준의 미래 통화정책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그는 1년에 4번 기자 회견을 통해 대중과 직접 만나게 된다. 가끔 시장을 놀라게 했던 그린스펀-버냉키와는 달리 옐런 체제에서는 시장의 '안정'을 우선 순위로 둘 것으로 전망된다. 연준 최초의 여성 의장인 만큼 여성적 리더십의 특징도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흔히 남성은 목표지향적이지만 여성은 관계지향적이라고 한다. 남성은 모험을 즐기지만 여성은 안정을 우선시 한다고 한다. 여성이 이끄는 연준은 테이퍼링이라는 '목표'에 집중하기 보다는 시장과 경제의 안정이라는 '관계'를 우선시하는 의장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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