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 독일 4대 로펌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글라이스 루츠' 프랑크푸르트 사무소 앞. 마이클 부리안 변호사(왼쪽), 정준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서울=연합인포맥스) 오유경 기자 = "'제2의 노바엘이디(NOVALED)'가 많습니다"

독일 4대 로펌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글라이스 루츠에서 파견 근무 중인 정준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25일 이같이 독일 기업 인수·합병(M&A) 업계의 소식을 전하며 국내 기업과 사모투자펀드(PEF), 기관투자자 등의 관심을 촉구했다.

M&A 업계에서 잠잠한 행보를 보였던 삼성그룹은 지난 8월 계열사인 제일모직과 삼성전자를 앞세워 독일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재료 업체인 노바엘이디를 약 3천100억원에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노바엘이디는 OLED 재료와 소자 분야의 핵심 특허 등 총 출원 특허 수만 530여 건에 달하는 알짜 기업이다.

정 변호사는 "유로존 최대 경제국인 독일에는 노바엘이디처럼 중간 규모의 기업 중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기업들이 매우 많다"며 "이러한 기업들이 독일 경제를 이끌어가는 근간으로 한국 기업들에는 매력적인 매물"이라고 설명했다.



◇中·日 기업 獨 M&A 시장에서 '활약'…韓은 '아직' = 한국 기업들의 독일 기업 인수 사례가 이따금 있었지만, 현재까지 트랙 레코드를 놓고 보면 아시아 기업 중에서는 일본 기업이 가장 큰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주택설비 제조 회사인 LIXIL는 현재 일본개발은행(DBJ)과 함께 독일의 고급 욕실·부엌 인테리어 기업인 그로헤의 지분 87.5%를 약 4조1천억원에 사들이는 '메가딜'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도 최근 몇 년 사이 급부상했다. 중국 산동중공업그룹은 작년 세계적인 지게차 생산업체인 독일 KION의 지분 25%를 약 1조50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정 변호사는 "고령화 등의 이유로 일본 내수시장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절박해진 일본 기업들이 해외 진출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며 "일본 기업은 독일 M&A 시장에서 가장 대접받는 손님 중 하나"라고 전했다.

그는 "중국 기업은 최근 진행되는 거의 모든 독일 M&A 딜에 관여돼 있을 정도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한국 기업들은 독일을 포함해 유럽 M&A 시장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은 상태다. 그나마 국민연금이 2010년 독일 베를린 최대의 복합시설인 소니센터를 약 8천500억원에 사들인 데 이어 최근에는 지멘스가 독일 뮌헨 본사로 사용한 건물도 인수를 추진하는 등 부동산 투자 건이 눈에 띄는 정도다.

이는 투자은행(IB)이 브로커리지 역할을 해 처음 딜을 발굴하고, 소개하면서 M&A가 시작되는데 국내에 지점을 둔 외국계 IB는 대부분 미국계로 홍콩에 아태지역 본부를 둔 탓도 있다. 이들 미국계 IB는 기본적으로 유럽계 IB와 비교했을 때 유럽 딜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딜을 잡았더라도 한국 지점에 기회가 오기 전에 미국이나 홍콩 IB가 현지 기업들을 대상으로 인수자를 찾는 경우가 많다.

정 변호사는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이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아직도 투자에 보수적인 기조여서 현재 독일 M&A 시장은 매도인보다 매수인이 다소 유리한 매수인 주도 시장(Buyer's Market)"이라며 "한국 기업에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독일 중견·중소기업들 중에는 가족이 주주인 기업이 많다"며 "이들 기업은 창업자가 은퇴하면서 경영권 승계 문제를 고민하다가 기업을 매각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전했다.





<사진 설명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글라이스 루츠 회의실에서 정준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좌)와 마이클 부리안 변호사>



◇영미계 로펌 공습에도 살아남은 '獨 토종 로펌' 글라이스 루츠 = 독일의 법률시장은 1998년 개방된 이후 영미계 로펌의 거센 공습을 받았지만, 독일 토종 로펌인 글라이스 루츠는 '톱 4'의 아성을 지키고 있다.

글라이스 루츠는 1949년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인 알프레드 글라이스의 1인 사무소로 설립돼 현재 300여명의 변호사들을 두고 있다. 독일과 벨기에에 7개 사무소가 있고, 폴란드와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에도 협력 사무소가 있다. 글라이스 루츠는 세계 최대 PEF 중 하나인 블랙스톤이 2011년 북해에 대규모 풍력 발전소를 설립하는 3조5천억원 규모의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건을 자문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지역 전문 변호사인 마이클 부리안 글라이스 루츠 변호사는 "글라이스 루츠는 합병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인력을 보강하고, 규모를 키우는 방식으로 성장해서 변호사들이 회사에 대한 애착이 크다"며 "오랜 기간 독일 법률 시장에서 뿌리깊게 자리 잡으며 독일 기업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리안 변호사는 "영미계 글로벌 로펌처럼 여러 국가에 사무실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글라이스 루츠는 전 세계에서 분야별로 최고의 변호사를 선택해 '드림팀'을 만들 수 있는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라이스 루츠는 법무법인 세종 등 한국의 유수 로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정 변호사와 긴밀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수료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법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2007년부터 세종에서 M&A 전문 변호사로 일하면서 작년 M&A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SK텔레콤의 하이닉스 인수 건에서 하이닉스 측을 자문하는 등 전문 M&A 변호사로 활약했다.

유년 시절 프랑스에서 살기도 했던 정 변호사는 특히 유창한 영어와 프랑스어 실력을 바탕으로 특히 유럽 지역 전문가로 정평이 나있다. 국내 로펌 소속 변호사들은 미국 명문대에서 법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이나 홍콩 로펌에 파견돼 일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정 변호사가 이례적으로 글라이스 루츠의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에서 근무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정 변호사는 "글라이스 루츠에서 근무하면서 현지에 있는 IB 관계자들과 변호사들을 두루 만나며 직접 독일 M&A 시장을 접했다"며 "유럽 금융 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투자자들이 주춤하는 사이 중국과 일본 투자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유럽 지역 M&A에 참여하고 있는지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 진출을 추진하는 한국 기업들에 최고의 자문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부리안 변호사는 "정 변호사와 함께 일해보니 한국 변호사들이 매우 뛰어나고, 한국 로펌들이 전 세계 어느 로펌에도 뒤지지 않을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M&A 시장에 대한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독일 로펌과 한국 M&A 시장·한국 기업들에 대해 가장 정통한 한국 로펌이 하나의 팀을 이루면 유럽에서 M&A를 추진하는 한국 기업들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yko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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