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요즘 케이블 TV 광고를 보면 2003년의 데자뷰(deja vu) 같다.카드사가 당시 TV 광고를 점령한 것처럼 대부업체가 요즘 케이블 TV 광고시장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케이블방송을 보면 대부업계의 광고로 홍수를 이룬다. 같은 광고가 두번 세번씩 반복되서 송출되고 중간 광고시간 전체가 대부업체들의 광고로 도배되기도 한다.

광고 업계에따르면 하루 평균 케이블 방송에서 노출되는 대부업체들의 대출 광고는 선두권의 경우 무려402회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광고 효과는 상당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대부업 개인신용대출은2007년 4조1000억원에서 2012년 8조6000억원으로 2배이상 커졌다.

막다른 골목인 대부업 시장으로 내몰리는 악성 다중 채무자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채무자들은 다급한 심정에 대부업시장에서 급전을 조달하지만 사정은 더 악화되고 수렁에 빠지기 십상이다. 대부업계에서대출 받는 순간부터 채무자들의 신용등급이 악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은행권 등 제도권 이용이 그만큼 더 어려워 진다는 의미다. 최고 이율이 40%에 육박하는 고금리를 감당하기도 쉽지 않다. 이자를 갚기 위해 대부업에 다시 손을 벌리는 이른바 악순환의 고리가 쉽게 완성되는 곳도 바로 대부업 시장이다.

재미를 본 대부업계는 케이블 TV광고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장사가 되니 더 많은 돈을 광고에 투입하는 게 당연한 선택이다.

대부업자만 탓할 게 아니다. 문제는 당국의 어정쩡한 태도다. 당국은 최근 대부업의 약진을 애써 외면하는 듯 한 스탠스를 보이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2003년 카드사태의 데자뷰가 완성된다.

2003년 카드사태 당시 금융감독위원회(금융위원회의 전신)와 금융감독원은 카드사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었지만 건전성에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당시 금감위와 금감원은 카드사 사장단을 불러모아 공동기자회견을 주선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당시 카드사의 평균 연체율이 10%선을 넘어섰지만 카드사 사장들은건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당국도 카드사가 카드채 등을 정상적으로 롤오버 하고 있어 건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안일한 진단만 되풀이했다.

결국 다중 채무자들이 여러 회사의 카드로 돌려막기에 한계를 드러내고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등 손을 들기 시작했다. 당시 1위 업체였던 LG카드는 곧 바로 부도 위기에 몰렸고 연쇄적으로 다른 카드사도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전체 금융 시스템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2003~2004년 우리 경제에 주름살을 지운 카드사태는 카드사의 탐욕과 이를 제어하지 못한 당국자들의 무책임 등을 바탕으로촉발된 예고된 인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계부채는 올해말로 1000조원을 상향돌파할 것으로 확실시된다. 가계 부채 문제는 가장 약한 연계고리인 대부업 시장에서부터 불거져 도미노식으로 확산될 수 있다. 당국이 좀더 적극적으로 최근 대부업계의 행태를 챙겨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국이 2003년 카드사태에 이어또 한 번 체면을 구겨서야 안될 일이다.(정책금융부장)

neo@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