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증권가는 '12.12 사태'라 하면 전두환 前 대통령의 군사반란 사건이 있었던 1979년의 12월 12일이 아닌, 증권시장 안정화 대책이 발표됐던 1989년의 12월 12일을 기억한다.

당시 재무부가 발표했던 증시 안정화 대책은 한투(韓投)와 대투(大投), 국투(國投) 등 굵직굵직한 투신사들이 '고꾸라지는' 시발점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증권사들은 정부에 증시 침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고 재무부는 이에 '증시 안정화 대책'을 내놨다.

1989년 말 증시는 한국종합주가지수 840선 수준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던 4월의 1,007에 비해 약 20% 가까이 폭락한 상황이었다.

이규성 당시 재무부 장관은 그해 12월 12일 침체된 증시가 되살아날 수 있도록 투신권이 주식을 무제한으로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투신권이 주식을 매입하도록 사실상 압박한 조치로 평가된다.

정부는 대책을 통해 주식을 발행할 때 시가 발행 할인율을 30% 범위 내에서 발행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했다.

일부 투신사에는 9천만달러 규모의 외국인전용펀드를 신규로 설정하도록 허가해줬다.

'약발'은 곧바로 나타났다. 발표가 있은 지 하루만에 주가는 900선을 단숨에 회복했다.

대책 발표 당일에는 상한가를 기록한 종목이 980여개에 달했고 다음날도 700여 종목이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상승장이 펼쳐졌다.

하지만 대책의 후폭풍이 불기까지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투신권의 무제한 주식 매입이 부메랑이 됐다.

정부가 만들어낸 호황도 오래가지 못하고 주가는 이내 550선으로 폭삭 내려앉았다.

정부 주도로 주식을 매입해 소화 불량 상태에 있었던 투신사들이 본격적으로 시련을 겪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의 대책에 따라 한투와 대투, 국투 등 투신권이 사들인 주식은 무려 2조7천억원 가량. 자기자본의 6배가 넘는 규모였다.

증시가 다시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이들 투신사들의 당기순손실은 4천억원에 달할 정도로 경영 상황이 악화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정부의 강제 주식 매입 조치가 투신사들의 운명이 바뀌는 시발점이 됐다"며 "증권업계도 12월 12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고 말했다. (산업증권부 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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