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2월 송년 음악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곡 중 하나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다. 합창의 클라이맥스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인 마지막 4악장이다. 베토벤은 이 곡에서 '모든 인간은 형제(Alle Menschen werden Br?der)'라는 주제를 노래하며 인류의 화합과 사랑, 믿음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이상향을 꿈꾼다.

거장 베토벤이 살았던 시대(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는 갈등과 대립, 혼란의 시대였다. 전제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무수한 혁명과 전쟁이 반복되며 수많은 인명이 살상됐다.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 워털루 전쟁 등이 모두 베토벤의 시대에 벌어졌다. 이 시대는 정치·경제·사회의 내부 모순과 갈등이 폭발하던 격동기였다. 이러한 시대에 베토벤은 '인류가 화합해서 갈등을 치유하자'고 호소했다.

갈등(葛藤)은 2013년 현재 우리 시대에도 적용되는 불편한 화두다. 한국은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갈등환경에 노출돼 있다. 보혁, 이념 갈등이 우리 정치를 지배하고, 노사 갈등을 비롯해 가계-기업-정부 등 각 경제주체의 갈등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세대 갈등과 빈부갈등은 우리 사회를 예민하게 만들고 있다. 김정은 체제에서 벌어지는 북한 내부의 갈등은 한반도의 지정학 리스크를 자극하는 불안요소다. 남북 갈등은 해가 갈수록 더욱 깊어져 해법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태평양 질서에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역사 문제가 얽힌 중국과 일본의 갈등, 한국과 일본의 갈등은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한반도 주변의 외교 갈등은 경제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큰 걱정거리다. 일본은 미국을 이용해 유리한 경제환경을 조성하고 있으나, 중국은 미국과 통상 갈등의 조짐이 나타나는 등 불편한 관계로 가고 있다. 미-중-일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

선진국의 경제회복과 신흥국의 위기는 양자의 갈등을 불러올 소지가 있다. 경제회복기에 들어선 미국은 테이퍼링(양적완화의 점진적 축소)을 시작했으나 이는 신흥국에 맹독을 품은 화살과 같다. 미국이 돈줄을 죄면 위기에 빠지는 신흥국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우리라고 예외일 수 없다. 아베노믹스의 일본은 추가로 돈을 풀 것을 예고하고 있으나 이는 한국 등 주변국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근린궁핍화 정책이다.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자국 이기주의 정서가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자본주의 독주를 둘러싼 지지자와 비판자들의 갈등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교황이 자본주의를 비판한 점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종교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건 시스템으로는 이미 자본주의의 독주를 견제할 장치가 없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적절한 견제를 받으면서 조금씩 수정될 때 건전한 체제로 갈 수 있다.

갈등이 깊어지는 건 타협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타협을 못 하는 건 대화가 없기 때문이다. 재기(再起)의 갑오년(甲午)이 되려면 국내 외에 뿌리내린 갈등의 치유가 시급하다. 우리 역사에서 갑오년은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다. 특히 1894년은 국내 갈등이 폭발한 동학농민운동, 외부 갈등이 폭발한 청일전쟁, 그 과정에서 나타난 근대로의 개혁(갑오경장)이 있었다. 2014년 갑오년과 당시의 국내외 상황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미래를 향하려면 대내외 갈등의 극복이 필수적이다. 한국이 갈등을 넘어서 도약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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