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문정현 기자 = "2009년 신종플루가 확산될 무렵이었어요. 주말을 쉬고 출근했더니 한 직원이 열이 많이 난다는 거예요. 혹시나 해서 병원을 가보라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신종플루였습니다. 휴가를 보냈는데, 전화기를 같이 쓰고 해서 그런지 신종플루에 걸리는 직원이 늘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아예 지점 문을 며칠간 닫았습니다."

신순철 신한은행 부행장보(업무개선그룹 담당)가 남부터미널금융센터장으로 근무하던 때 일이다. 당시 신종플루는 국내외 사망자가 나올만큼 사회적으로 심각한 이슈였다. 이미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은행 입장에서는 쉬쉬하고 싶은 일이었을 법도 한데, 신 부행장보는 과감하게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상황을 본부에 알렸죠. 직원이 며칠째 출근을 안하는데 휴가갔다고 계속 돌려 말할 수도 없고. 고객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본부 부서와 상의하면서 '이 사안은 정공법으로 가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본부도 영업보다 고객 보호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휴점하자고 했습니다. 3일 정도 문을 닫았고, 지점이 완전히 정상화하는데 약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신종플루로 인해 은행 지점이 휴점한 것은 은행권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당시 신한은행은 인근 지점으로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이동점포(뱅버드)를 운영해 지점을 찾는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했다. 지금도 이 에피소드는 위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낸 케이스로 행내에 회자되고 있다.

"고객들이 불편했을텐데 오히려 'OO 직원은 괜찮냐'고 걱정해줘서 감동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고객 보호를 위해 휴점까지 불사했던 그 지점장이 얼마전 신한은행 인사에서 첫 여성 임원으로 승진했다.

연합인포맥스는 지난 7일 신순철 부행장보를 직접 만나 35년 은행원 생활을 들어봤다.

◆빨간 '코트' 입고 현장을 누빈 기업금융 전문가 = 신 부행장보는 1979년 조흥은행에 입사하면서 은행원 생활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여성 임원들이 소비자보호나 웰스매니지먼트(WM)에 국한된 경력을 가진 반면, 신 부행장보는 행내에서 손에 꼽히는 기업금융 전문가다.

남다른 적극적인 자세가 이 같은 경력을 쌓는데 큰 도움이 됐다. 앞선 사례처럼 강한 결단력과 추진력에 후배들에게도 카리스마있는 선배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성에게 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여신 업무도 먼저 손들고 배우겠다고 나섰다고 한다.

"나중에 꼭 임원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배운 것은 아닙니다. 학교 다닐 때도 남자든 여자든 다 제치고 1등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저 사람들은 하는데 나는 왜 안돼', 그런 마음이었죠. 예전에 책임자 고시(승진 고시)라는게 있었습니다. 이를 통과하려면 수신과 여신, 기업분석을 공부해야 하는데, 여신 분야는 업무 경험이 없으니 교본을 봐도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공부를 하면서 여신 업무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차장(지금의 부점장급)이었던 심사하시는 분에게 시험에 합격하면 여신 업무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합격 후 인정을 받아서 갔죠."

신 부행장보는 1998년 여신지원부 신용조사역으로 일하다가 2001년 강서기업금융센터 지점장으로 발령됐다.

"기업금융은 아무래도 고객 발굴이 가장 힘든 일입니다. 공단을 찾아다니며 마케팅을 했죠. 저는 빨간색 옷을 좋아하는데요. 빨간 트렌치 코트를 입고 업체를 찾아가 실무자랑 얘기를 나누곤 했었습니다. 아무래도 눈에 띄니 사장님이 지나가다 보고 거래로 연결된 경우도 있었죠. 한번 방문하면 남자보다 기억에 남는다는 점에서 여성이 유리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 계열사를 가진 회장의 마음을 움직여 큰 거래를 따낸 보람있는 순간도 있었지만, 초창기에는 마음 고생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강서기업금융센터 지점장이 되고 1년이 되기 전이었던 때로 기억합니다. 한 업체와 거래가 잘 진행되고 있다가 막판에 다른 은행에 뺏긴 적이 있었습니다. 영업을 하다보면 모두 성공할 수 없기에 그럴 수 있는데, 같은 시기에 거래를 하고 있던 다른 업체가 갑자기 아무런 얘기도 없이 타행으로 옮긴 적이 있었습니다. 정성을 다했던 곳이라 참 힘들었었죠."

◆가족의 지원이 든든한 버팀목 = 신 부행장보는 신한은행 최초의 여성 임원이다. 두터웠던 은행권의 유리천장이 깨는데는 남편과 아들, 딸의 든든한 지원이 힘이 됐다고 한다.

"한 여자의 성공 뒤에는 반드시 한 여자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자식처럼 키워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예요. 유아원이나 도우미가 돌봐줘서는 여성이 커리어를 키워가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워주셨습니다. 지금 출산 휴가는 예전에 비해 많이 늘어났지만, 육아에 대한 인프라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습니다. 지자체나 회사 등 사회 전반적인 장치가 미흡한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써 해결 방법은 그 순간을 참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어요."

늘 바쁜 직장맘이었던 탓에 아들 딸에게 미안한 순간도 많았다고 했다.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버이날 편지에 '엄마 안 나가면 안돼'라고 썼더라고요. 그걸 보고 마음이 많이 짠했습니다. 다른 엄마들이 자식들에게 많은 지원을 하는 걸 보고 부럽기도 했죠. 그에 비해 제 아이들은 그야 말로 '자연 성장'했습니다.(웃음)"

그래도 지금은 의젓한 사회인으로 자란 아들 딸이 자랑스럽다. "지금 딸이 심리 상담사가 되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나중에 동업할 생각입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심리 상담을 하는거예요. 조직 생활에 고민이 생겨도 멘토가 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병원을 찾아가기도 어렵잖아요. 제 직장 경험을 살려 조언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직원에 기회 많이 줘야" = 신 부행장보는 은행권에 부는 여풍(女風)이 분명 긍정적인 일이지만, 일을 추진하고 평가받는 측면에서 '여성'이라는 점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한다. 성별 논란을 뛰어넘을 정도로 확실한 성과를 내겠다는 자신감과 의지로도 읽힌다.

"첫 여성임원으로서 어깨가 무겁습니다. 업무와 이미지 관리를 모두 잘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여자라서 발탁됐다는게 아니라 남자와 어깨를 겨뤄서도 손색이 없다는 얘기를 들어야 나중에 후배에게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여성 직원과 남성 직원 간에 주어지는 업무 기회가 불평등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능력 있는 여직원에게 기회를 더 주는 것은 중요하지만 단지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발탁하진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여성들이 부각되니) 주변에서 우려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남성 임원이 여성 인력을 적극 발탁하겠다는 말과, 여성 임원이 여성 인력을 적극 발탁하겠다는 말은 같은 말이라고 해도 듣는 사람이 다른 뉘앙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행장보로서 여성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겠다는 말을 하기엔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너무 급격한 변화보다 서서히 변해가는게 중요합니다."

◆"IT 동향 파악해 발빠르게 대응할 것" = 신 부행장보가 맡은 업무는 업무개선·정보보안·IT기획·IT개발이다. 그 동안의 커리어를 볼 때 새로운 분야지만 빠른 시간내 정착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부 정책과 국내외 환경에 맞춰 잘 대응하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산 업무는 현장에서 필요한 IT를 지원해주는 곳인데, 영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을 예정입니다."

조직 관리에 있어서는 화음이 멋진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나만 아는, 한 개인이 두드러지는 조직이 아니라 프리라이더 없이 전체 조직이 멋진 합창 소리를 내는 조직을 만들어나갈 계획입니다."

<프로필>

-1960년 10월 5일생

-1979.2. 대전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2002.2.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2004.8.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졸업(경영학)

-1979.4. 조흥은행 입행

-1998.6. 여신지원부 신용조사역

-2001.9. 강서기업금융센터 지점장

-2002.7. 영등포기업지점 지점장겸 RM

-2004.7. 여신심사부 심사역

-2006.4. 광화문기업금융지점 SRM

-2006.7. 신촌중앙기업금융지점 지점장겸 SRM

-2009.2. 남부터미널금융센터 센터장겸PRM

-2011.1. 개인금융부장

-2012.1. 경기중부본부 본부장

jhmoon@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