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기자회견 발언 강도는 어느 때보다 셌다. 경기 개선에 대한 확신은 더 강해졌고, 물가 전망에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엔저와 원고로 대비되는 환율 우려와 관련해서도 큰 걱정은 없는 듯했다.

김중수 총재는 9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이 잠재성장률인 3% 후반에 근접했다고 평가했다. 머지않아 국내총생산(GDP) 마이너스 갭이 플러스로 돌아설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통위원들이 머리를 맞대서 정리한 '통화정책방향'에서도 GDP갭이 당분간 마이너스 상태를 유지하겠으나 그 폭이 점차 축소될 것이란 문구가 나왔다. 기존의 '상당기간' 마이너스에서 '당분간' 마이너스로 통방 문구에 변화를 준 것이다. 김 총재를 포함해 금통위원 대다수가 경기 회복 가능성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주요 근거다.

김 총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하반기에는 한국은행의 중기 물가안정목표인 2.5~3.5% 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의 저물가 기조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만큼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인위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릴 생각은 없다는 얘기다.

최근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를 높인 주된 배경이 됐던 엔저 현상에 대해서도 간접적인 금융지원을 강조하면서 환율과 관련한 금리정책 대응은 없을 것임을 에둘러 설명했다.

김 총재의 경기와 물가, 환율 등과 관련한 발언은 기존 입장과 크게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존의 매파적 성향이 다시 한번 확인된 것임에 불과할 수 있다.

다만,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를 의식한 듯 김 총재는 "누차 설명해왔지만"이라는 단서를 반복하면서 이전보다는 분명하게 발언 강도를 세게 가져간 것으로 평가된다. 적어도 본인의 임기 중에는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것이나 다름이 없어 보인다.

이날 금통위를 계기로 채권시장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는 한풀 꺾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금리동결이 만장일치로 결정됐다는 점도 시장의 기대치를 크게 낮추는 요인이다.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나왔다면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차기 총재 내정 이후에나 정책 방향에 기대를 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임승태 금통위원도 임기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금통위원의 교체가 이뤄지면 의외로 정치적인 문제가 주요 고려 요인이 될 수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테이퍼링 등으로 금융시장의 안정이 훼손될 경우 정책방향이 급선회할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 엔저와 원고 등으로 국내 수출경기가 타격을 입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 총재는 "미 테이퍼링이 국제금융시장에 단기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어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정책금융부 채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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