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태문영 기자 = 국제 유가 강세로 한국 원화를 비롯한 신흥통화가 매도 압력에 노출될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특히 에너지 순수입국의 통화가 가장 먼저 매도 대상이 될 것으로 진단됐다.

이는 석유 수입 비용이 증가하면서 경상수지가 악화하고, 해당 신흥국 통화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2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시장참가자들은 아직 유가 상승의 여파가 본격적인 신흥통화 매도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이란의 핵시설을 둘러싼 서방과 이란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4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125달러를 돌파해 10개월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현재 수준에서 배럴당 10달러 이상 오르면 신흥시장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무역 불균형이 큰 국가라면 그 피해는 더 커진다고 진단했다.

데이비드 다우셋 RBC 블루베이 자산운용 매니저는 "석유 수입국의 경상수지가 (유가 상승으로) 적자 압력을 받는 지점에 가까워진다고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드리안 밀러 GMP증권 수석 전략가는 "중동과 관련된 테일 리스크(tail risk. 거대한 일회성 사건이 자산 가치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가 매우 커졌다"며 "이는 "이는 선진국 경제보다는 신흥국 경제에 편중한 충격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신흥국 중에서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석유 순 수입 규모가 가장 큰 국가들이 유가 상승에 따른 여파에 취약할 것으로 지목됐다.

한국과 태국, 터키, 이스라엘, 헝가리의 석유 수입 비중은 GDP 대비 5%를 넘는다.

특히 터키는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안고 있으며 인도는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크고 에너지 수요가 증가해 루피화가 매도 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유럽 신흥국 중 석유 수입국이나 다른 여러 아시아 국가 역시 유가 상승에 따른 통화 매도 압력에 취약할 것으로 진단됐다.

반면에 유가 상승은 러시아와 브라질 등 석유 수출국 통화 가치가 상승하는 계기가 된다.

러시아는 석유 순수출이 GDP 대비 10%를 훨씬 웃돈다.

27일 루블화는 달러화에 약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이미 유가 상승에 따른 통화가치 상승이 포착됐다.

브라질 헤알화도 유가 상승의 영향으로 절상될 수 있다.

다만, 남미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 경제가 유가 상승의 피해를 본다면 브라질 경제에도 그 여파를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이 있다.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유가 상승과 관련된 베팅은 아직 조심스러운 분위기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테일 리스크가 매우 크다고 경고했다.

유가 급등의 충격이 글로벌 경기 침체는 물론 신흥국의 인플레이션 우려를 증폭시킨다.

물가에 민감한 신흥국 통화 당국이지만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로 기준금리 인하 압력을 받고 있다. 금리 인하는 신흥국에서 투자자 유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베노아 안느 소시에테제네랄 신흥시장 전략 헤드는 보고서에서 "(신흥국에 대한 매도로) 위험 선호심리가 심각하게 손상될 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이 유가 상승을 인플레이션 리스크와 연결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my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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