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서울 채권시장과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이제 정치인의 발언과 청와대 동향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당 중진인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직전인 지난 8일 기준금리를 획기적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등 정치권이 통화정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통화정책은 통치이념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여당 중진의 발언은 가볍게 여길 사안이 아니다.

경기 회복에 올인하고 있는 집권 여당 정치인은 물론재정 여력이 바닥난 정부도 기준금리 인하를 내심 바라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경제 파트의 부처 관계자들은 한은 금통위가 금리 인하 시기를 실기한 것 같다며 통화정책에 대한 아쉬움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당과 행정부가 한은 금통위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확인된 셈이다. 경제지표로 설명하기 힘든 의외의 통화정책 방향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실제 한은기준금리 등 통화정책에 정치권과 행정부의요구가 반영된 선례도 있다. 이같은 사정은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도 마찮가지다. 일본은 아베 정권 출범 직후 집권 세력의 통치 이념을 따르지 않는 일본은행(BOJ) 총재를 조기에 경질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굳이 일본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각국의 중앙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거시 정책을 최대한 뒷받침하는 통화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지난주초에 발표된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도 이런 정치적 메카니즘을 염두에 둔것으로 풀이됐다. 서울 채권시장과 외환시장이 지난주 열린 새해 첫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를 모처럼 주목한 것도 이 보고서의 영향이 컸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과도한 원화절상 등을 제어하기 위해 1월 기준금리 인하가 유력한 것으로 점쳤다. 환율은 아베노믹스가 제일 강력한 무기로 삼을 정도로 고도의 통치이념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골드만삭스의 보고서가 정치적 메카니즘을 반영했다고 풀이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무라는 비슷한 시기에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내릴 이유가 전혀 없다는 보고서를 통해 골드만삭스의 주장을 정면반박했다. 노무라는 잠재성장률 수준을 회복하는 등 경제지표만 보면 기준금리를 도저히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등 금융통화위원 7명 전원이 지난 9일 정례회의에서 1월 기준금리를 연 2.50%에 동결하면서 두 기관의 명암이 엇갈렸다. 특히 금통위원들이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1라운드는 노무라가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기관의 자존심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정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등 정치 과잉의 시스템이 여러 차례 작동된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행정부가 작심만 하면 기준금리도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지 못했다. 2012년 7월 김중수 한은 총재가 청와대 경제금융점검회의(서별관회의)에 참석한 뒤 기준금리가 전격 인하된 바 있다. 이에 앞서 2004년 11월 박승 전 총재가 이른바 서별관 회의에 참석한 뒤 기준금리가 내렸고 강골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성태 전 총재 시절인2008년 10월에도서별관 회의 뒤에 기준금리가 전격 인하됐었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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