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설명:정병훈 KB자산운용 매니저>

(서울=연합인포맥스) 한재영 기자 = "코스피가 3,000 찍을 걸 기대하는 고객이 롱숏펀드에 투자하면 안 됩니다. 답답해 죽을 수도 있어요(웃음). 넣고 잊는 투자가 돼야 합니다."

연합인포맥스가 지난 10일 여의도 KB자산운용 본사에서 만난 정병훈 매니저(부장)는 펀드매니저 특유의 넘치는 자신감보다는 겸손함이, 까칠함보다는 온화함이 행동에서 묻어났다. 함박웃음을 지을 때는 그저 마음씨 착한 동네 형 같았다. 마냥 '사람 좋아보이는' 정 매니저도 주식 얘기 할 때는 눈빛과 태도가 변했다. 인터뷰는 예상 시간을 훌쩍 넘어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KB자산운용은 지난 7일 하나UBS자산운용에서 헤지펀드를 운용하던 정 매니저를 내세운 'KB코리아롱숏펀드'를 선보였다. 'KB코리아롱숏펀드'는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롱숏 포지션 구축에 들어간다.

▲ '박현주 키즈' 1세대 한국형 헤지펀드 매니저로 = 주식에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이름만 들었던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여자인줄 알 정도였다. 그랬던 정병훈 매니저가 2002년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덜컥' 입사했다. 그것도 주식운용부.

회사에서는 '백지상태니 오히려 가르치기 쉽겠다'고 했다. 당시 윗분이 지금은 국내 운용업계를 이끌고있는 김태우 피델리티자산운용 대표와 손동식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다. 이들 밑에서 정 매니저는 주식에 확실히 눈을 떴다.

미래에셋을 다니던 2006년 메릴린치 홍콩법인으로 옮겼다. 메릴린치가 3~5년 후 스핀오프(spin off) 할 목적으로 인터널(internal) 헤지펀드팀을 꾸렸는데, 거기에 주식 롱숏을 담당할 선수로 정 매니저가 낙점됐다. 인도, 대만, 중국 등에서 온 선수들이 한 팀을 이뤘다.

'신나게' 배우며 일할 무렵 금융위기가 터졌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메릴린치를 인수했다. 점령군이 된 BoA는 메릴린치더러 기존에 하던 고위험 사업을 접어 달라고 요청했다. 정 매니저가 있던 인터널 헤지펀드팀은 사라졌다. 정 매니저도 짐을 쌌다.

3년여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출범을 앞둔 '한국형 헤지펀드'였다. 진재욱 하나UBS자산운용 대표가 '홍콩에서 배운 대로 해라'며 힘을 실어줬다. 그렇게 정 매니저는 우리나라 헤지펀드 시장 초기 멤버가 됐고 '1세대 헤지펀드 매니저' 수식어가 붙었다.

▲ 헤지펀드 1세대, KB운용에 둥지 = 하나UBS자산운용에서 헤지펀드를 운용하던 정 매니저는 본인이 KB자산운용으로 옮긴 데 대해 "서로의 니즈(needs)가 잘 맞았다"고 했다. 롱숏 전략으로 중위험 중수익을 추구하는 상품 라인업이 없었던 KB자산운용과 리테일 쪽에서 보다 규모가 큰 펀드를 운영하고 싶었던 정 매니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트러스톤자산운용과 마이다스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이 지난해 롱숏펀드로 고객의 쌈짓돈을 끌어모으지만, KB자산운용은 해당 상품 라인업이 없어 손가락만 빨았다. KB자산운용 입장에서는 롱숏 전략이 절대적인 헤지펀드를 운용해본 정 매니저가 롱숏펀드 운용자로 적격이었다. 송성엽 CIO가 직접 컨택을 해왔다.

정 매니저는 "우리나라가 규제가 풀린 것은 맞지만 좀 큰 펀드를 하려면 리테일 쪽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봤다"며 "헤지펀드보다는 주식 롱숏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장을 보는 시각도 정 매니저와 KB자산운용은 잘 맞았다. 지난해 하반기 외국인 자금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와 지수가 오를 때 시장에는 2,500까지 오를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들을 쏟아졌다. 정 매니저 생각은 달랐다. 그는 과거처럼 우리나라가 미국 경기 회복의 수혜를 온전히 받지 못할 것으로 봤다.

수출주가 대부분인 우리나라가 제조업 등을 바탕으로 살아난 미국 경기회복의 효과를 과거만큼 누리기가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그는 "과거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수출한 것을 소비하던 미국에 제조업이 살아났다"며 "어느 정도 자국 내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국가로 바뀌었다는 얘기다"라고 설명했다.

▲ KB운용서 첫 작품 'KB코리아롱숏펀드' = KB자산운용은 지난 7일 정 매니저를 앞세워 'KB코리아롱숏펀드'를 내놨다. 지난해 롱숏펀드 열풍이 국내 시장을 이미 한 번 휩쓸고 간 것을 감안하면 롱숏펀드에 있어 KB운용은 사실 후발주자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롱숏 포지션 구축에 들어간다는 정 매니저는 "당연히 부담은 된다"면서도 "설렌다"고 말했다. 기존 롱숏펀드와의 비교우위를 설명해달라는 질문에는 "매니저가 다르지 않냐"며 웃었다.

'자신감의 표현이냐'는 질문에 그는 "롱숏펀드의 상품 구조는 이미 업그레이드가 될 만큼 다 돼 새롭게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다른 게 있다면 운용하는 매니저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답했다.

그는 중위험 중수익을 노리는 펀드 성격에 맞춰 '금리+α'의 수익률을 기대하고 있다. 수치로 따지면 5~7% 수준이다. 제시 수익률 자체가 높은 펀드는 아닌 셈이다. 정 매니저는 "지수가 3,000을 간다고 하면 이 펀드는 의미가 없다"면서 "하지만 시장 변동성이 계속 생기기 때문에 내릴 때 많이 잃지 않고 오를 때 좀 더 안정적으로 벌자는 펀드다"고 설명했다.

정 매니저는 펀드의 성공 필수 요인으로 '리서치'를 꼽았다. 단순히 롱 포지션만 잡고 있다가 오르면 팔아 수익을 챙기는 뮤추얼펀드 말고,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 종목(숏)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한 만큼 리서치와의 시너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에는 올라갈 것만 봤지만 이제는 아니다"라며 "기존에는 롱으로 시작해 수익을 얻으면 끝났지만 롱숏은 숏으로 시작해 수익을 얻는 걸로 끝난다. 양쪽으로 리서치가 다 가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측면에서 KB자산운용의 리서치 역량은 탁월하다고 치켜세웠다.

jy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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