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STX팬오션이 2천5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위해 실시한 공모청약에 5조원이 넘는 뭉칫돈이 몰리자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그간 STX그룹을 짓눌러 왔던 차입 부담과 신용위험에 대한 우려가 한방에 해소됐다는 의견과 함께 해운 시황에 대한 투자자들의 낙관적인 기대가 동시에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증시의 투기성 부동자금이 펀더멘털과는 상관없이 단지 발행조건이 비교적 좋았던 STX팬오션의 BW로 몰린 것에 불과하다는 냉소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29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지난 27일과 28일 이틀간 실시된 STX팬오션 BW 공모청약에 5조3천266억2천400만원의 자금이 몰렸다. 청약경쟁률은 무려 21.31대1.

그룹내 다른 계열사인 STX조선해양이 불과 두달전 실시한 BW(1천억원) 공모청약에 86억원의 자금이 들어오면서 청약경쟁률이 0.31대1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다.

이번 STX팬오션의 BW 공모청약에 대규모 자금이 몰린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발행조건이 좋았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표면금리가 3%, 만기 수익률은 5%(3년 만기)였고, 모처럼 나온 신용등급 'A'급의 발행물이라는데 투자자들이 큰 매력을 느꼈다는 것이다.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이 6천980원으로 전일 종가인 7천410원보다 낮았는데 향후 주가 흐름이 양호할 것이란 기대도 자금을 끌어들이는데 한 몫했다.

4월2일부터 신주인수권을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는데, 상당한 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신주인수권 거래를 통한 차익이 아니더라도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해도 수익률 5%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STX팬오션이 회사채를 발행했다면 금리는 6% 초중반 정도가 될 수 있다.

이는 3년물 기준으로 동일 등급의 무보증 공모채에 대한 민간시가평가금리에 비해 200bp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신주인수권 조건이 좋다 보니 만기 수익률이 회사채보다 다소 낮아졌지만 5%는 여전히 동일 등급 회사채에 비해 50bp 이상 높다.

주식과 채권의 조합인 BW의 조건이 투자자들에게 여러모로 좋았던 셈이다.

증권사의 한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는 "최근 회사채 리테일 투자자들도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는 추세여서 만일 회사채로 발행했더라면 투자자 모집에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다. 하지만 BW의 조건이 좋다 보니 주식을 주로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수요가 많았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크레디트 시장 전문가들은 그러나 STX팬오션이 BW 공모청약에서 대규모 자금을 모으는 데 성공했더라도 신용위험이 크게 완화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STX팬오션은 이번에 조달한 자금 2천500억원 중 1천453억원은 연료비(722억원)와 선박금융 차입금(759억원) 상환에 쓰고, 1천47억원은 신규 발주 선박 투자비로 활용할 예정이다.

STX팬오션은 앞으로도 자금 부담이 여전하다. 작년 말 현재 건화물선 45척과 중량물운반선 1척, VLCC 2척, 자동차운반선 2척, 컨테이너선 2척, PSV 3척 등 총 55척의 신규 선박을 발주해 놓은 상태다.

2014년까지 순차적으로 이들 선박을 인도할 예정인데, 총 투자규모만도 2조원이 넘는다.

내년 9월까지 인도될 13척 가운데 올해 7월까지 지급해야 할 자기부담금액이 1조473억원에 달한다.

최근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어 연료비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부담이다.

그렇다고 해운시황이 단기간에 좋아져 실적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도 않다.

STX팬오션이 전일 발표한 지난해 실적(IFRS 연결기준)은 해운시황 개선 없이는 실적이 좋아질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매출은 전년대비 11.24% 줄었고, 영업손실과 당기손실이 각각 229억원과 220억원을 기록해 적자로 돌아섰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평정보고서에서 "업황 침체 등으로 실적 부진의 장기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대규모 투자 탓에 차입금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기평은 이어 "향후 영업실적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당분간 만기도래 차입금의 원활한 차환 여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다른 해운사들에 비해 신용위험이 열등한 상황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증권사의 한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는 "3개월 단위로 용선 계약을 갱신하고, 화물운송 계약도 1∼2년으로 길게 가져가기 때문에 업황 대응 능력은 다른 해운사에 비해 우수한 편이다"고 평가했다.

pisces738@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