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우리나라의 기획재정부 등 경제관료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스타플레이어'로 대접 받아 마땅할지도 모른다. 미국이 테이퍼링에 나서면서 신흥국들이 혼쭐이 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들의 활약 덕분에 견조한 경제 흐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등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최고 모범생이라고 치켜세우기 바쁘다. 외국인의 원화채 투자가 100조원에 이르고 달러-원 환율이 미국의 테이퍼링 이후 유일하게 절상되는 등 각종 지표를 보면 경제관료들과 금통위의 노고에 칭찬을 보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우리나라 경제가 앞으로도 모범생 노릇을 지속할 지는 불투명하다. 특히 성장동력이 너무 빠른 속도록 약화되고 있다.경제관료들과 금통위원들은 심각성에 비해 너무 굼뜬 대응패턴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우리 경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기업과 가계의 역할 역전이다. 전통적으로 저축의 주체였던 가계는 대출의 주체로 전락하고 있고 대출을 통해 투자를 이끌었던 기업이 저축의 주체가 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말 현재 기업의 저축성 예금이 271조원에 이른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2008년 149조원에 비해 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기업의 저축률은 2000년 12.8%에서 최근 19% 수준까지 뛰어오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업들이 위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투자에 나서기보다 이익을 내부에 유보시킨 결과다.

기업의 저축률이 일본에 이어 2위 수준까지 뛰어 오르는 등 큰 폭으로 상승한 반면, 가계의 저축률은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개인순저축률은 1990년까지 경제성장에 따른 가계소득 증가로 20%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1990년대 초반 이후 줄곧 하락하고 있다. 국내 가계저축률은 지난해 2.7%를 기록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3%의 절반수준(2011년 기준)에 불과했다. 독일 10.4%의 4분의 1수준이고 금융위기의 주범인미국의 4.2%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가계의 전통적인 수입원인 이자가 이제 기업의 수입원이 되고 있다. 가계가 저축을 하고 금융기관이 기업에 대출한 뒤 이자 수익을 가계로 되돌려주는 건강한 거시경제의 모형이 완전히 뒤틀린 셈이다.

우리나라를 모범생 지위까지 끌어올렸다는 경제관료들과 금통위원들이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경제 순환 시스템의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흐른뒤 가계를 희생시켜서 기업만 살찌웠다는 지청구를 듣기 싫으면 거시경제 운용방향의 틀을 서둘러 재검토해야할 것 같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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