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창헌 기자 = 여의도 증권가에 우정사업본부발(發) 경고등이 켜졌다.

증권사 신탁 부문 최대 큰 손인 우정사업본부가 수십조원에 달하는 기업어음(CP) 매칭형 신탁을 지속적으로 환매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은 일부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 유동성 리스크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0일 서울채권시장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우정사업본부는 작년 말 증권사 특정금전신탁에 맡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등 CP 매칭형상품 계약 일부를 해지했다.

당시 해지 규모는 수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A증권사가 발행한 상품에 해지가 몰려 그 충격은 더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연말 자금수요가 많아진 일부 대기업도 환매에 가세했다.

한 증권사 FICC 담당 임원은 "A증권사가 5년짜리 신용부도스와프(CDS)를 기초자산으로 한 1년 미만의 ABCP를 만들어 우정본부에 집중적으로 팔았다"며 "우정본부가 감사원 지적 등으로 대거 환매에 나섰으나 시장에서 재매각이 제대로 안 돼 이 증권사가 유동성 압박을 크게 받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5월말 현재 우정본부의 ABCP 투자 총액은 23조원에 이른다. 예금자산에서 약 20조원, 보험자산에서 약 3조원이 각각 투입됐다. CP와 ABCP를 합친 비중은 우정본부 전체 예금자산의 39.96%, 보험자산의 8.61%에 달하는 규모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우정본부가 CP 매칭형 상품에 대한 투자 비중이 과도한 데다, 이 상품에 내재한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우정본부는 신탁 해지를 통해 ABCP 투자 비중을 빠른 속도로 낮추고 있다. 작년 말에 이어 이달 말에도 추가로 대규모 해지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증권사들이 떨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지난해 공격적으로 우정본부에 ABCP 상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A증권사에 대한 우려가 크다.

A증권사의 작년 말 신탁자산은 약 13조원으로, 1년새 10조원가량 급증했다. 우정본부 자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로 대량의 해지가 나오면 자금 충당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

서울채권시장 한 관계자는 "우정본부가 투자자금을 회수하면 증권사는 ABCP를 시장에 내다 팔아서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단기 크레딧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이라 해지 물량이 수조원대에 이르면 소화가 제대로 안 될 것"이라며 "일부 중소형사의 경우 바터 등 편법거래의 유혹이 커질 수밖에 없고, 최악의 경우 증권업계 전반에 시스템 리스크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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