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규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



(서울=연합인포맥스) 이종혁 남승표 기자 = "법에서 정한 지급규정만 개정된다면 40만 명의 건설근로자에게 퇴직금 620억 원을 더 지급할 수 있습니다."

이진규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은 3일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더 많은 건설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국회가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 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건설근로자공제회는 건설근로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건고법)을 바탕으로 1998년 설립됐다. 사업주가 내는 공제부금을 바탕으로 건설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며 공제회 가입 근로자 360만 명, 운용자산은 2조 원에 달한다.

이진규 이사장은 "건설 호황기 때 법이 제정되다 보니 퇴직금 지급 조건이 252일 이상 근무해야 하는 등 까다롭다"며 "이미 퇴직금은 적립되어 있어 지급기준 완화에 따른 재정적인 부담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업주로부터 받은 공제부금은 공제회의 운영과 분리된 부금회계로 별도 운영되기 때문에 공제회가 미지급금을 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이진규 이사장은 강조했다.

벌써 2조 원에 달하는 공제회의 자산은 투자심의위원회, 자산운용위원회, 리스크관리위원회 등 투자 안전장치를 거쳐 운용된다. 연기금 전문 컨설팅 회사에 용역을 맡겨 '중장기 자산운용 마스터플랜'을 준비하는 등 위험에 대한 대비도 마쳤다.

지난 1년 동안 자발적 급여 삭감 등 내부 개혁에 집중했던 공제회는 이제 건설근로자의 토털라이프를 책임지는 기관으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이진규 이사장은 "양말 한 켤레에도 무너지는 건설근로자의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이 분들이 안심하고 자식들을 키우고 살아갈 수 있도록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이진규 이사장은 국회사무처 보좌관, 여의도연구소 연구위원 등 정치권을 거쳐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실 기획비서관, 정무기획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다음은 이진규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중요한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고 들었다.

▲사업주가 내는 공제부금을 현행 4천 원에서 5천 원으로 인상하고, 퇴직금 지급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의 건고법 개정안이 국회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건설퇴직공제 제도가 건설 호황기 때 만들어지다 보니 퇴직금을 받으려면 252일 이상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건설업이 장기침체에 접어든 지금으로서는 충족시키기 어려운 조건이다. 이 때문에 4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미 적립된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금액으로는 620억 원정도 된다. 그래서 근무일수가 조금 못 미치더라도 당사자가 65세이거나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유족에게 퇴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개정안을 올렸다.

건설근로자퇴직금은 공제회 운영경비와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일부에서 오해하시는 부분인데, 퇴직금은 사업주가 내는 부금으로 지급하고, 공제회의 운영경비는 별도 수수료 개념의 부가금으로 충당한다. 공제회로서는 한 사람의 건설근로자라도 더 퇴직금을 받아가는 것이 좋다. 지급기준이 완화되더라도 이미 퇴직금은 적립된 만큼 추가 재정부담도 없다.

--이사장의 자진 연봉삭감 등 공제회의 내부혁신이 화제가 됐다.

▲공제회가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이지만 건설업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국토부 산하 기관을 모델로 급여수준 등이 설계됐다. 다른 고용부 산하 11개 기관은 공제회만큼 높지 않다. 여기에 과거 부실투자했던 대체투자 문제도 지적되고 해서 먼저 내려놓자고 직원들에게 제안했다. 사실 이사장 연봉을 30%가 아니라 더 줄이려고 했는데 임원들이 걸렸다. 이사장 기준으로 책정되는데 직원보다 밑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생겼다.

그래서 급여 외에 이사장 업무추진비 같은 경비는 1억 원 이상 줄였다. 꼭 필요한 경우는 카드로 쓰도록 했다. 노동조합에서도 급여 인상을 동결하고 다시 3%를 반납하겠다고 동참해줬다. 아마 외부의 지적 없이 자발적으로 이렇게 나온 것은 공제회가 처음이 아닐까 한다. 고용부 산하기관 회의에 참석하니 장관께서도 고맙다고 말씀하셨고, 일부에서는 공공의 적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웃음)

--공제회가 금융기관의 성격도 있는데 너무 내린 것 아닌가.

▲작년 겨울, 경기 성남 태평고개 새벽 인력시장에서 건설근로자들께 양말 300켤레를 나눠 드렸다. 그런데 직접 나눠 드린 건 한 켤레밖에 없었다.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어 각자 가져가 버렸다. 양말 한 켤레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직원들에게 이것이 우리가 도와 드려야 하는 분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분들을 생각하면 봉사와 희생이 앞서야 한다. 공제회 임원으로 금융인이 와도 좋지만, 봉사와 희생을 하시겠다는 분이 먼저다. 이건 공제회의 특성과도 관계가 있다. 건설근로자의 퇴직금인 부금회계는 공제회의 경상경비와는 철저하게 분리돼 있다. 공제회 운영은 사업주가 납입하는 부가금 200원이 전부다. 건설근로자의 퇴직공제부금은 한 푼도 손대지 않는다.

--자산 규모가 어느새 2조 원이다. 대체투자 실적 때문에 국회에서 지적받기도 했는데 이후 어떻게 개선됐는지 궁금하다.

▲글로벌 경제위기 전에 투자한 것들이 망가졌다. 취임 전 일이지만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 이후 부실재발 방지를 위해 관련 시스템도 강화하고 사람도 교체하는 등 투명성과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공제회의 대체투자 문제가 불거진 것도 시가평가 결과를 결산에 반영해 상각처리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투자심의위원회','자산운용위원회', '리스크관리위원회' 등 투명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수립·시행했다. 그 결과 2010년 이후 투자에서는 단 1건도 부실이 없었고 2013년에는 '공공기관 자산운용체계 평가'에서 최상위로 인정받기도 했다.

연기금 전문 컨설팅 기관인 타워스왓슨을 통해 '중장기 자산운용 마스터 플랜'도 마련했고, 자산운용팀과 리스크관리팀에 전문가를 보강해 시스템뿐만 아니라 인력 부분도 보완했다.

--올해 공제회의 목표는 무엇인가.

▲건설근로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관이 되려 한다. 지금까지 해 왔던 퇴직공제사업이 1기였다면 2기가 시작된다. 마침 취임 이후 공제회가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건설근로자가 400만 명을 헤아리지만, 이들의 삶에 대한 각종 자료나 통계가 많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공론화도 잘 되지 못한다. 건설근로자라고 해도 직종에 따라 급여 편차가 크고 또 알려지지 않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일례로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보면 건설근로자의 일당을 어음처럼 할인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정당하게 일하고도 온전한 몫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건설근로자 1천여 분을 단체보험에 가입시켰다. 이분들이 각종 관절 질환을 지닌 데다 현장 상황까지 열악하다 보니 보험 가입이 어렵다. 그래서 공제회가 보험혜택을 받도록 무료가입시켜 드렸다. 명실상부한 일용직 건설 근로자의 토털라이프를 책임지는 기관으로 업그레이드 할 것이다.

이진규 이사장은 공제회로 온 것이 어쩌면 운명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를 나올 무렵 그는 민간 회사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사장 후보 면접에서 그는 건설업은 모르지만, 건설현장 근로자에 대해서는 조금 안다고 말했다. 질통을 지고 모래를 나르며 학업을 마쳤던 그에게 건설근로자는 함께 일하던 동료였던 까닭이다.

이진규 이사장은 "공사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청년이 건설 근로자의 복지를 책임지는 기관장이 됐다"며 "건설근로자들이 안심하고 자식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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