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신임 한은 총재 내정자 인사는 고민의 결정판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상 첫 인사 청문회라는 정치적 부담을 피하고 동시에 통화정책의 전문성을 충족시키는 인물을 낙점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만약 '비까번쩍'한 S급 명망가들을 내정했다가 청문회에서 낙마하게 될 경우의 정치적 후폭풍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어느 때보다 높아진 엄격한 도덕성 잣대로 일부 후보들은 손사래를 치며 고사하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보다 어려운' 인사에서 한은 출신 인사가 낙점될 공산이 어느때보다 높았다는 후문이다.

이제 관심은 개정 한은법에 따라 이달 중에 열릴 국회 인사 청문회에 쏠린다.

국회의원들은 평소 엄격한 자기 관리에 충실했던 인물이 내정됨에 따라 다소 김이 빠질지 모르지만, 기존 행정부처 장관 청문회처럼 도덕성 시비나 개인 신상 문제로 한 건 하려 했던 계획은 일단 접어야 할 것 같다. 대신 인사 청문회가 국내외 경제와 금융의 전문성과 통화정책을 검증하는 자리로 바뀌면서 깊이 있는 금융 공부를 파고 들어야하는 예상치 못한 숙제 부담이 커졌다.

시장에서는 이번 청문회가 근래 어느 때보다 보기 드문 수준 높고 전문적인 통화 정책 토론과 경제 담론이 전개될 '금융 이벤트'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벌써부터 높다.

차기 총재 임기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시기와 겹친 상황이기에 테이퍼링의 향방과, 이 여건하에서 국내 통화정책의 기조를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한 큰 그림, 정책을 수행할 능력을 어느 정도 갖췄는지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것이다. 또 '시장과의 소통 능력'에 대한 검증도 집중적으로 펼쳐질 전망이다.

통화정책의 수행에서 '독립성 의지'도 주요 이슈지만, 동시에 정부 정책과의 조율과 공조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도 공개될 것이다. 통화정책이 독립성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경제정책과 완전 별도로 갈 수 없는 중요한 일부라는 차원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의 공조 또는 협조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는 중요하다.

국내 경제에 디플레이션 우려가 있지만 인플레이션 위험도 무시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금융위기 이후 비정상적인 통화정책을 정상화로 돌리는 과정에서 한은의 역할 변화와 권한과 책임을 더 넓게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총재 내정자는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도 궁금하다. 또 경기침체기에는 신용의 공급을 통한 중앙은행의 '불씨 지피기' 역할이 절실하다는 시각과, 물가가 급등하고 자산가격 거품이 존재했던 과거에는 신용 통제를 통한 브레이크 기능이 중요했지만, 경제 여건이 달라진 만큼 통화정책 목표를 '금융 안정' 혹은 '경제시스템의 종합적인 안정'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어떤 입장을 밝힐지도 관심이 쏠린다.

한편 35년 정통 한은맨 출신인 내정자에게는 금융감독 체계 개편 과정에서 금융위 및 금감원과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할 정치력이 있는지, 한은의 국제화와 내부 개혁을 계승 발전시킬 청사진은 어떤 것인지도 청문회에서 속시원히 말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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