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 25일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에서 열린 한 작은 행사는 한국 산업계 토양을 시사해주기에 충분했다.

네이버 주관으로 열린 이 행사에서는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모임인 '베이 에어리어 K-그룹(Bay Area K-Group)'이 창업에 대한 제언과 실전 경험들을 들려주는 자리였다. 이 모임은 실리콘밸리에서 벤처를 열어 성공하거나 페이스북, 트위터, 징가, 넷플릭스 등 글로벌 IT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2천600여명의 한국인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다.

윤종영 베이 에어리어 K-그룹 공동대표는 "실리콘밸리는 창업자를 중심으로 정부와 대학, 벤처캐피탈, 엔젤투자자, 로펌, 회계사, 대기업 등이 모두 도움을 주기 위해 움직이며 정부의 역할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말은 한국과 미국의 벤처기업 육성 토양이 다르다는 얘기다. 새로운 사실은 아니지만 여전히 반복 지적은 멈추질 않고 있다. 베이 에어리어 K-그룹 2천600명의 회원 상당수는 환경이 더 좋은 미국으로 건너간 이들일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해 생명공학 관련 창업 신고업체는 단 두 곳이었다. 약사법과 식약처 승인을 비롯해 통과해야 할 벽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인명을 다루는 산업이니 엄격한 규제와 조건이 당연한 것이지만 대안없는 규제는 산업의 황폐화와 출발 자체를 차단한다.

엔젤투자를 받아 창업 단계인 한 생명공학 업체 A대표는 "기술은 자신있지만 자금력은 부족하고, 돈을 빌리기엔 금융회사의 문턱은 높다" 며 "운영자금이 필요해 지원기관에 의뢰했더니 사업연혁을 첨부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창업단계인 회사가 연혁이 있을리 만무한데도 말이다.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성토의 장이었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규제 항목은 매년 증가해 노무현 정부때 5천여건에 달하던 것이 이명박 정부 말기엔 1만5천건까지 급증했다. 대부분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이렇게 짧은 기간에 규제항목이 급증한 이유에 대해선 속시원한 대답이 없다.

자본시장에서도 규제는 거래자들에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12년 코스피200 옵션 승수를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인상하면서 거래 진입장벽이 높아졌고 시장도 위축됐다. 또 각종 과세조치나 주식워런트증권(ELW) 유동성공급자(LP) 호가 제한, FX마진거래 증거금 인상 등도 국내 파생시장 확대를 기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규제의 양면성과 역설은 하필 대통령이 직접 발벗고 나선 시점에 엉뚱한 곳에서 불거져 나왔다. 바로 KT ENS 협력업체 불법대출 사건의 경우다. 금융권 규제의 직접 주체인 금융감독원까지 비리에 개입된 이번 사건을 보면서 금융산업에 있어 규제와 통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필요악(必要惡)'일 수 있다. 금융산업에 있어 허술한 규제는 불특정 다수에게 큰 피해로 돌아온다는 측면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강화할 규제와 풀어야 할 규제는 따로 있고, 규제를 집행하는 주체의 자격에 대한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산업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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