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자본주의(資本主義)란 무엇인가. 한 사회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나 근본정신을 상징하는 'ㅇㅇ주의'라는 말 앞에 '자본'이라는 단어가 붙어,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고 숭상되는 시스템, 인류사에서 가장 혹독하고 무서운 가치체계가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란 쉽게 말해 '돈 주의(Moneyism)'라는 의미다.

인류는 왜 자본주의를 채택했을까. 돈이 중심이 되면 모든 질서가 간단 명료하게 설명되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신정(神政), 왕정(王政), 민주주의, 공산주의 시대는 모든 개념이 추상적이다.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많은 갈등과 분쟁이 생겼다. 하지만 누구라도 쉽게 동의하는 객관성과 획일성을 확보한 숫자와 금액으로 표시되는 돈이라는 잣대가 등장하면서 모든 것은 명료해지고 일사천리로 통합됐다.

정부도 기업도 가계도 개인 등 경제주체들이 돈이라는 저울로 세상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게 되자 사회적 효율성은 극대화됐다. 하지만 그 반대편의 비용, 돈의 신격화에 따른 부작용이 그만큼 커진다는 사실은 간과했다.

돈이 신(神)의 자리를 대신해 물신(物神)이 세상의 주인이 되자 그동안 사람들이 소중하게 지켜왔던 가치들, 예컨대 인간의 존엄, 정의, 사랑, 행복은 본질이 붕괴하거나 전도되기 시작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고, 돈으로 평가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이 많다는 사실은 차츰 잊혔고 신의 자리를 차지한 괴물의 폭주 앞에 모두가 무릎 꿇었다.

대한민국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채택한 이후, 물신이 사람들의 유전자 속까지 침투하면서 이런 상태는 심해졌다.

세월호 사태는 이런 상태가 빚어낸 참사의 한 조각이다. 배에는 사람보다 짐(돈)이 먼저였고, 생명의 존엄과 사람들의 믿음은 한낱 거추장스러운 껍데기일 뿐이었다.

앞으로 상당기간 이런 현실에 대한 회한과 반성은 이어질 것이다. 성찰적이지 않고, 윤리적 판단의 마비와 사회적 사유가 정지된 상황에 대한 참회는 지속할 것이다.

하지만 비판과 반성이 강도를 더해갈수록 주지하다시피 돈 중심 가치 체계의 저항 강도도 비례해서 커질 것이다. 돈은 집요하게 사람들에게 여유와 행복을 주는 달콤함을 앞세워 속삭일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이 고령화되면서 마음속으로는 '믿을 것은 돈뿐'이라며 돈에 더 의존하게 될지도 모른다. 돈이 만능은 아니지만 만능과 비슷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세력이 줄지 않고, 돈의 속성과 돈을 먼저 알아보는 게 자신들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자본주의의 이념은 성(城)처럼 굳건할 것 같다.

그러면서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해나갈 것이다. "돈의 중요성만 알고 한계성을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돈의 한계성만 알고 중요성을 모른 것도 문제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과 돈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다르다. 돈은 전부가 아닐 뿐 절대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돈에 대하여 공부하고 연구하고 훈련하라, 돈으로 말하는 사람이 되라. 돈으로 자식에게 인생을 가르치는 부모가 되라."

전대미문의 사건을 겪은 사실을 차츰 잊으면서 사람들이 다시 돈에 집착하고 중독되어 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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