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수상이 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관련, "해당국 지도자들이 금융시장에서 '실시간(Real time)'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혼란과 고통은 줄었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금은 일반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각국 대통령과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들은 자신의 발언이 시장에 '실시간'으로 전달된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불필요한 국가적 비용의 낭비가 컸다는 아쉬움의 표현이다.

과거 이헌재 경제부총리 시절 국회에서는 환율정책 청문회가 열렸고, 의원들에게만 대외비로 배포한 자료가 외신에 유출돼 기사화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원들이 외환당국자를 불러놓고 선물환 개입의 규모와 손익을 공개 추궁하고 이 내용이 실시간으로 국내·외 시장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투기꾼들이 포함된 외국인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무지한 정치 과잉이 빚어낸 미숙함의 극치 그 자체였다.

전문성과 정무적 감각, 뚝심을 겸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내정자가 축하차 찾아온 기자들에게 집앞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으며, 환율에 대해 언급한 것이 시장에 상당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최 내정자는 "지금껏 수출해서 일자리를 만드니까 국민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고환율을 강조했는데 이제 경제성장을 하는데도 국민에게 돌아오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고, 국정 기조 첫째가 '경제부흥'이고, 둘째가 '국민행복'인데, 거시적 성장이 국민 행복과 따로 떨어지면 안 되고 경제부흥과 국민행복은 같이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외환시장은 당국의 패를 읽으려고 '기 싸움'이 치열하고, 환율의 향방에 대해 논란이 한창이다. 이러한 때에 그가 간접적으로라도 환율과 관련된 시각을 설명한 것은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취임도 하기 전부터 앞으로 원화 가치의 상승을 막으려는 당국의 '스무딩 오퍼레이션' 빈도가 종전보다 상당히 약해질 수 있음을 예고하는 전략의 일단을 드러낸 것 같아 뒷 감당을 어떻게 하려는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가 지식경제부 장관 시절부터 고환율에 따른 경상 흑자만 강조할 게 아니라는 점을 밝혀 온 만큼, 앞으로는 일부 대기업만 수혜를 입는 환율정책을 고수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외환 당국의 기조가 바뀔 수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외환딜러뿐 아니라 국내 및 외국인 채권, 주식투자자들, 수출·입 기업의 환율 담당자들은 그의 말을 곱씹지 않을 수 없고, 앞으로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이해관계가 첨예한 큰돈이 걸린 외환 등 금융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다.

그가 이끄는 2기 경제팀이 성공하려면 시장과 호흡하고 발언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 우선이다. 따라서 앞으로 특히 금융시장의 가격변수와 관련해서는 우선 이번 부총리 인사 청문회 때부터 의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 보는 것은 어떨까싶다.

"당국자가 외환,채권,주식시장에 실시간으로 영향 줄 수 있는 사안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다."

그러면 외국인들조차도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는 분이 왔네"라며 긴장하기 시작할 것 같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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