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간판 금융회사 CEO인 A씨. 그는 인생에서 가장 큰 스승이 평생을 말없이 누워만 있던 아버지였다고 회고한다. A씨의 부친은 그가 초등학교 시절 중풍으로 쓰러지고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병석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그는 가난 속에서 아버지의 오줌 똥을 받아내는 일을 도우며 어린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감내하기에 힘든 하루하루에 수차례 가출을 결심했지만 어머니와 누이의 눈물 나는 희생과 인내를 지켜보며 여러 차례 마음을 돌리기도 했다. 일찍부터 학교와 책,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삶의 민 낯에 직면하면서, 그는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일찍 '인간이란 무엇인가', '세상이란 어떤 곳인가'에 눈뜰 수 있었다고 말한다.

토마스 피케티(Thomas Piketty) 교수의 양극화와 불평등에 대한 고찰이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위 1퍼센트의 부의 크기가 점점 더 증가하고, 세습 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가 굳어져 미래의 경제성장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한다. 부의 편재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두 가지 측면 때문이다. 다름 아닌 '건강관리'와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에서 생기는 불평등이다.

브루킹스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1970년대 미국 부유층의 수명은 중산층이나 하류층보다 평균 6년이나 더 길었고, 최근에는 다이어트 기술과 스트레스가 없는 환경 조성, 고가 의료혜택의 진화 덕분에 10년 이상 더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부유층 자제와 가난한 집 아이가 받는 교육의 질에서도 격차가 커졌다. 부유층 자제들은 6,000시간이나 과외활동에 노출되고, 읽기 쓰기, 수리와 관련된 광범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부모와 외국여행이 일상적이며 각종 음악과 미술, 무용을 배우고, 특히 어릴 적부터 승마, 요트, 골프, 하키 등 고급 스포츠를 체험한다. 보고 경험한 게 많아서 대뇌 신피질 용량이 크게는 두 배나 커진다고 한다.

돈이 많고 적음이 결국은 '인간수명 격차'와 '직업과 계급을 세습'시켜 차별화를 영속화하고, 마침내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지면서 계급 간의 조화가 깨지게 된다.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결국은 민주주의 체제가 위협을 받는다.

이쯤에서 하나의 질문이 나올 법하다. 아이에게 풍족하고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과연 결핍과 불화를 조성하는 것보다 반드시 한 인간의 잠재력을 깨우고 삶의 의미를 심화하고, 행복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심리학자,교육학자,사회학자의 논쟁이 이어지지만, 최근에는 대답은 점점 더 '그렇다'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무엇하나 아쉬울 것 없이 뒷바라지한 아이는 자기가 잘나서 성공한 줄 알고 나중에 극도로 이기적으로 변하고, 혹독한 가난과 어려움을 물려준 아이는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희생도 할 줄 안다는 우리 주변의 일화들이 앞으로 점점 더 실현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미국 못지않은 우리 사회의 각종 양극화 지표들을 보면서, A씨와 같은 고난극복 성공 사례가 나오기 점점 어려울 것 같다는 우려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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