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신라 6두품 출신이었던 어린 최치원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한 탈출구는 당(唐)나라 유학이었다. 엄격한 골품제에서 6두품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17관등 가운데 6등위에 해당하는 아찬(阿飡) 이상의 벼슬에 오를 수 없었다. 유학 6년 만인 874년, 피나는 노력 끝에 마침내 그는 18세의 나이로 빈공과(賓貢科)에 장원으로 합격했다. 최치원의 '성공담(success story)'은 이후 야심만만하지만 춥고 가난한 신라 청년들에게 당나라 유학 바람을 거세게 불러일으킨 기폭제였다.

1천2백 년이 지난 현재, 이번에는 당나라의 후예들이 돈과 자본을 싸 짊어지고 한반도에 열풍처럼 들이닥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현재 중국 자금의 한국 금융시장 유입액이 200억 달러 수준, 3~4년 내에 60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중국 외환보유액 4조 달러 중 1% 정도인 400억 달러로 한국의 국고채를 추가 매수한다고 가정한다면, 국고채 금리는 폭락하고, 한국의 통화 및 금리정책은 중국 런민은행(人民銀行)의 수중에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런 즈음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주에 방한해 위안화 중심의 금융질서 재편이라는 거대 소용돌이의 가속 페달을 심하게 밟고 있다. 연내에 서울에 원화와 중국 위안화를 바로 교환할 수 있는 외환시장을 설립하고, 한국에 최대 800억 위안(약 13조 원) 한도의 RQ-FII(런민비 적격 외국인 기관투자가) 자격을 부여해 한국 내 금융회사들이 위안화로 중국 본토 주식·채권시장에 투자하는 길도 열어주기로 했다.

이런 중국에 대한 직접 금융투자 허용은, 물론 위안화 허브를 구축하기 위해 영국.프랑스에게 제한적으로 용인했지만, 지금까지는 중화경제권인 홍콩.대만.싱가포르에만 허용한 것으로, 다분히 중국의 속셈이 오랜 역사적 특수관계인 한국을 중화경제권으로 편입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연내 한중 FTA까지 체결되면 한국은 금융뿐 아니라 전 산업분야에서 중화경제권으로의 편입이 가속화할 것이다. 근세 들어 잠시 주춤했던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구심력은 더 커질 것이고, 금융과 경제의 의존성 심화가 정치와 사회·문화 분야로 급속하게 확대될 전망이다.

이런 한반도의 미래 그림을 보여줄 축소판이 최근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 제주를 방문한 중국 관광객은 작년 64만 명보다 60%가 급증한 100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급기야 제주특별자치도가 공직자와 시민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중국어 교육에 나섰는데, 이 지역 외국인 면세점 매출이 2011년 1,864억 원에서 2013년 4,496억 원으로 늘어났으니 중국어를 배우지 않고는 먹고 살 수가 없게 된 때문이다. 제주도의 내수와 고용은 이미 '왕서방'들의 투자와 관광에 의해 목줄이 잡혔고, 제주도는 돌.바람.여자의 삼다도가 아니라 중국인까지 합쳐 사다도(四多島)가 됐다.

대중 무역의존도 26%, 한국은 '중국의 열기(fever of china)' 속으로 너무나 급속하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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