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나이가 드니까 이제야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가 들리네". 머리가 희끗희끗한 음대 교수 A가 나직이 내뱉었다.

한 천재가 어둡고 고통스러운 현실의 모순과 질곡을 겪은 뒤에 작곡한 작품을, 젊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인생의 쓴맛 단맛을 본 뒤에야 비로소 공감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나이 듦이란 무엇인가. A교수는 젊어서 듣고 보아도, 들리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육안(肉眼)이 아닌 심안(心眼)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최경환 부총리가 취임하고 나서 단행한 차관, 차관보급 인사 대상자들 나이가 50대 초·중반이라고 한다. 인사 숨통이 트이게 됐다고 후배들이 환호한다지만, 온 국민이 크게 늙어가는(超高齡化) 상황에서 중앙부처 고위직을 50대 중반만 되면 모두 물러나게 하고 조로(早老)한 '꽃 중년'들로 새로 꾸린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고위 공무원들이 너무 젊어진 것은 이번 정부들어서만의 일은 아니다. 그동안 역대 정권이 국정 분위기 반전용으로 공무원 인사를 이용한 탓에 '선출직'과는 달리 '임명직' 인사를 일회용 반창고쯤으로 여기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고위 공무원 한 명을 길러내려면 자신도 노력하지만 엄청난 국가적 투자가 필요하다. 젊어서 물러나는 관료들이 관피아 척결 분위기로 말미암아 재취업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고작 1년 미만의 보직 재직 수명을 마치고 '고등 백수'가 된다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수 백대 1 경쟁의 고시를 통과하고, 각종 국내외 연수와 해외 근무, 정책 수립에 필요한 종합적인 사고와 전문지식의 습득, 국회와 언론, 민원인을 상대로 오랫동안 훈련된 최고급 인적 자원(Resource)이다.

100세 고령화 시대에 국가적으로 이런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안이 이제는 마련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최 부총리도 이들의 인사 문제와 관련 "앞으로는 현직에서 오랫동안 복무하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최 부총리가 과거 다른 '바지 부총리'처럼 눈치 보지 말고 관료들이 신분 불안 느끼지 않게끔 오래오래 써먹을 방안을 고안해서 인사 정책에 반영하길 기대한다. 고위 공무원들도 승진보다는 60세 정년까지 공직생활을 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며, 이런 일이 제대로 정착된다면 후배 공무원들의 신분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이 들면 보이는 게 많아진다. 예컨대 국가 최대 당면 과제인 고령화 정책이 대표적이다. 30대 사무관이 노인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은 자신이 체험하지 않는 일에는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정책의 디테일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면 현재의 젊은 사무관과 서기관, 과장들이 불만을 터트릴지 모른다. "선배들만 오래 해먹느냐". 걱정할 것 없다. 라틴어의 명구처럼 나이가 듦은 '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 Cras Tibi)'이기 때문이다. 젊은 공무원들도 반드시 늙을 것이다.

승진도 퇴직도 '빨리빨리' 문화가 극심한 한국 사회에서 연륜이 쌓인 공무원들의 등장은 정책 균형감각과 무한 고령화될 국민과의 소통 공감에도 도움이 될 법하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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