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벤처 열풍이 불던 2000년 전후. 기술력 하나로 기업공개와 자본조달에 뛰어들었던 주요 벤처기업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곳은 몇군데 되지 않는다.

메디슨과 한글과컴퓨터, 안철수연구소 등으로 대표되는 살아남은 벤처들 역시 제대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중 국가 경제에 파급 효과가 큰 제조업 벤처로 성공한 곳은 팬택 정도였다. 대기업만 할 수 있는 자본기술집약 산업인 휴대전화 부문에서 삼성과 LG, 그리고 해외기업인 노키아와 모토롤라에 맞선 유일한 기업이었다.

1991년 자본금 4천만원과 직원 6명으로 출발했던 팬택의 붕괴는 한국적 토양에서 일궈낸 소중한 제조업 벤처의 역사에서 비극으로 평가된다.

특히 제조업 벤처의 융성은 국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대기업들 편중 현상을 일소하고, 고용확대와 틈새시장에서의 강한 경쟁력, 로우 엔드(Low end)로 통칭되는 저가 시장에서의 `작은 기업'의 유용성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팬택이 해외 매각될 경우, 기술 유출의 우려나 국내 판매망에 대한 해외 업체들의 손쉬운 진입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깨자는 인식이 확산되고 갖가지 방안이 동원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벤처의 한국적 토양은 척박한 게 현실이라는 게 팬택의 붕괴로 또 다시 입증됐다.

12일 전격 발표된 새 경제팀의 경기부양책만 해도 그렇다.

`최경환표 경기부양책'의 가장 큰 의의는 `경기부양을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게 가장 큰 효과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 세제개편이나 서비스업 활성화 방안 등은 사실 실효성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게 현실이고, 중장기적으로 경기부양의 필수인 산업활성화대책, 특히 중견 이하의 벤처를 포함한 산업측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은 빠져 있다.

유보이익에 과세한다는 내용이나 배당유도 등은 기업들의 영업환경이 다양하다는걸 무시하고 다소 독선적으로 접근하는 모양새고, 투자자들이 왜 투자를 안하는지를 보지않고 `안하면 세금 메기겠다'는 식으로 보일 수 있다.

그간 다른 나라들은 부양책을 계속 밀어부치고, 일부는 양적완화까지 하는데 우리 정부는 너무 소극적이라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늦었지만 부양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시적인 조치들이 나온게 의미가 있긴 하다. 하지만 기업을 압박해서 임금을 인상하고 투자를 늘리게해서 가계소득을 늘리고, 그래서 내수 활성화되는걸 기대하는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문제다.

소득이 `반짝' 늘어도 우리나라처럼 고용이 불안하고 경기전망이 밝지 않다면 정부가 의도하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기 힘들다.

`긴급 처방'이라는 점에선 이번 경기활성화 대책에 이의가 없을런지 몰라도 `풀뿌리경제를 위한 벤처'의 생존 토양에 대한 대책도 병행돼야 한다. 그래야 중장기적인 경기의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며, 힘겹게 일궈낸 우량 벤처의 몰락을 막을 수 있다. 기업들은 정부의 그 역할을 기대하고 땀흘려 번 돈으로 세금을 내는 것이다.

(산업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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