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영화를 사랑한다. 영화는 세상을 바꾸는 도구라는 희망을 버릴 수 없기에, 영화에서 받은 개개인의 감동이,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듯이, 희망의 회오리를 일으키고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새 5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금융권 CEO와 직원들이 감정이입이 된 채 폭풍 관람한 영화 '명량'을 봤다.

보는 내내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했다.

다 좋았던 백 개 중에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충무공의 '무서운 내면의 침묵'에 관한 내용이 좀 더 녹아 있었더라면 하는 것이다.

작가 김훈은 '칼의 노래'를 쓰고서 몇 년 전에 한 언론에 이렇게 말했다.

"제가 소설에 차마 못썼던 중요한 대목이 있으니 그것은 그분의 침묵입니다. 한산도에서 서울로 끌려간 장군은 임금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조정을 능멸했다는 누명을 쓰고 통제사직을 박탈당하고 백의종군의 명령을 받게됩니다. 하지만 정유재란이 심각해지자 그를 다시 바다로 나가라고 하죠.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도 사람인데, 연전연승하는 이를 고문으로 몸을 망가뜨리고 군인의 명예를 다 짓밟아 다시 전쟁터로 가라고 한다면 조선의 왕과, 정치권력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죄없이 박해당하고 치욕 당한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나는 알 수가 없어요. 그는 취중에도 그 일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죠. 죽을 때까지, 그렇게 기록을 좋아하시는 분이 일기나 편지에도 그 일을 쓴 적이 없습니다. 가슴에다 묻고 간 것입니다. 아마 그분이 그 정치적 원한을 발설하고 그 원한에 매몰되었다면 12척으로 명량에서, 노량에서도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무서운 침묵 속에 파묻어 버릴 수 있었기에 그분은 조선의 정치권력보다 더 큰 인물이 되었죠. 하지만 제 소설에는 그 침묵이나 내면이 정확히 살아있지가 않아요. 감히 넘보거나 묘사하기가 매우 어려운 대목이었죠. 저의 소설은 미완성입니다."

'명량'의 영화감독도 김훈과 같은 이유로 이 대목을 영화에 녹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광복절 연휴동안 '칼의 노래'의 언어들이 살아 숨쉬는 서해안의 노을이 아름다운 아산을 다녀왔다. 현충사에서 김훈은 눈이 그치고 혼자서 하루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보다가 저물어서야 돌아왔다고 한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바다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죽음을 가로지를 때, 나는 죽어지기 전까지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었고 나는 늘 살아 있었다. 삶과 분리된 죽음은 죽음 그 자체만으로 각오되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삶을 버린 자가 죽음을 가로지를 수는 없을 것이었는데, 바다에서 그 경계는 늘 불분명했고 경계의 불분명함은 확실했다. '길고 가파른 전투가 끝나는 저녁바다'는 죽고 부서져서 물에 뜬 것들의 쓰레기로 덮였고 화약 연기에 노을이 스몄다. 그 노을 속에서 나는 늘 살아 있었고, 살아서 기진맥진했다.』(김훈, '칼의 노래' p.209~210)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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