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우중 전회장이 대우그룹 해체 15년만에 입을 열면서 채권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서 '회사채 신속인수제도'가 새삼 화제다. 김우중 전 회장이 2000년 전후로 경제관료들이 기획해서 대우그룹을 해체했다며 책임론을 제기한 가운데 당시 비슷한 처지에 있던 옛 현대그룹(지금의 현대차그룹,현대중공업,현대그룹의 모태)이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분수령이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였기 때문이다.

대우그룹 해체 등으로 2000년 10월31일 코스피지수가 483.58까지 내려서면서 1998년 IMF 구제금융에 이어 다시 한번 나라가 거덜날 것이라는 공포가 엄습했다. 내로라했던 삼성그룹과 옛 현대그룹도 당시에는 예외 없이 유동성 위기에 시달려야 했다.







<2000년 옛 현대그룹이 유동성 위기를겪을 당시 급락세를 보였던 코스피>



특히 옛 현대그룹은 매출 부진에 따른 유동성 부족으로바람 앞의 등불같은 신세로 전락했다. 급기야 2000년 3월14일,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이른바 '왕자의 난'이라 일컬어진 경영권 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형제들은 그룹의 모태였던현대건설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두 달 뒤 채권단이 1천억원에 이르는 유동성을 현대건설에 긴급 지원했지만 언발에 오줌 누기였다. 대한민국 성장의자존심이었고 그룹의 정신적 지주였던 현대건설은 결국 2000년 8월 워크아웃에 돌입하기에 이르렀다.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그룹 전체로 확산된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2001년 1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전격 도입했다. 대우그룹 해체에 이어 당시 현대그룹까지 타격을 받으면 우리나라 경제가 수습 불가능한 수렁으로 빠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는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하면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 기관이 80%를 인수하고 나머지 20%를 채권은행과 기업이 책임지는 특혜성 금융지원 대책이다. 2001년 제도 도입 당시 인수되는 회사채의 80%가 현대 관련 채권이었다. 현대그룹을 위한 특혜성 지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제도였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다가 지금은 효자가된 SK하이닉스(예전 하이닉스) 등도 이 제도의 도움으로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셈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좀처럼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지 못하고 경제관료들을 탓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김우중 전회장 입장에서는 왜 현대는 되고 대우는 되지 못했는지 납득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회장측은 대우그룹도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적용했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해왔고 전혀 터무니 없는 주장도 아닌 듯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에 따라 엇갈린 두 그룹의 명운이나 경제관료의 잘잘못이 아니다. 이 제도의 교훈은 지금 잘 나가는 재벌들 모두 국가적인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IMF외환위기,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넘기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재벌 2세,3세들이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STX그룹 등 중견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등 우리나라 산업의 뼈대를 이뤘던건설, 조선, 해운 업종의 일부 업체가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지난 2013년부터 회사채 신속인수제가 부활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등 국가적 지원 여부에 따라 명운이 엇갈릴 재벌가들이 제도 도입 15년이 지난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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