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총재가 지난 주말(16~17일) 한은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집행간부 및 부서장 워크숍에서 발언한 연설문 전문입니다.



집행간부 및 부서장

인재개발원 workshop

2012년 3월 16일

총재 김 중 수



중앙은행의 과제와 비전: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가는가?



<들어가는 말>



오늘 이 자리에는 한국은행의 “내일을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자들이 다 함께 모여 있습니다. “Global BOK”를 기치로 내걸고, 한국은행을 세계 속의 중앙은행으로 우뚝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총재에 취임한지 어언 2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은 한 나라에 하나밖에 없고, 한 나라의 국가경쟁력은 개방되지 않은 부문의 경쟁력에 의존한다는 매우 명료한 전제에 의거, 그러한 목표를 제시하였었으나, 그 취지를 이해시키고 협조를 구하면서 실천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과업이었습니다.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조직은 경쟁과 협조관계를 맺을 수 있는 동료(peer)를 당연히 국내에서는 찾을 수 없으므로, 결국 외국에 있는 동료들을 찾아서 만나야 하며 이를 위해 “globalize”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해 왔습니다. 총재 뿐 아니라 모든 직급의 직원들에게 이것이 필요하므로, 다수의 직원을 외국 기관에 장기 직무훈련 보내는 한편, 총재의 회의 참석 시에도 최소한의 필수인원만 대동하고, 이에 따라 과거에, 그리고 다른 기관의 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절약되는 예산을 일반 직원들의 대외활동 강화에 사용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산절약의 결과로, 과거에 비해 매년 수십 명의 직원들이 추가적으로 국제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대외지향적인 활동을 이와 같이 의도적으로 하지 않을 경우, 혼자서 국내에 안주하게 되고, 바깥세상을 알지 못하는 좁은 시각을 갖게 되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게 되는 위험이 상존하게 됩니다.



또한 사회의 개방된 부문에서는 국제경쟁력을 구비하지 못하게 되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되어 저절로 사라지게 되고, 따라서 한 나라의 국가경쟁력은 결국 개방되지 않은 부문의 국제경쟁력에 의하여 결정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중앙은행도 상대방 국가의 중앙은행보다 경쟁력의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서도 역시 ”global“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는 것을 이미 수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건설되지 않았듯이, 오랜 역사와 전통도 역시 하루아침에 구축되지는 않았겠지만, 또한 오랜 관행이 하루아침에 변화하지도 않는다는 말도 맞을 것입니다. 대외 변화를 경험해 보지 못한 취약점이나 명분과 현실의 충돌에 기인할 수도 있겠고, 한편으로는 중앙은행의 위상이나 역할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는 것, 다른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 이 모든 요인들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과거 그 어느 때에 비교할 수 없었을 정도의 많은 개혁이 이루어져 왔으며, 그 효과가 나타나는 데에는 필히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겠으나, 이미 우리 조직에는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많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시간이 흐른 후, 그 때가 역사적 변화의 시발점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게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회고해 보면, 지난 2년 전 Paris에서 한은에 올 때의 심경이 1995년 3월 OECD가입협상책임자의 특명을 받고 Paris로 떠날 때의 심경과 비슷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외교관출신 아닌 경제전문가가 국가협상의 책임자가 되었던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입니다. 거의 2년에 걸친 매우 긴장된 협상과정에서 OECD회원국 및 사무국 그리고 우리나라 협상단 통틀어서 17개에 달하는 전 협상과정에 참여한 유일한 대표가 본인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한 사람이 전 분야의 협상에서 국가를 대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필설로 형언할 수 없었던 부담과 도전이 계속된 날들이었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경륜이 높았던 OECD사무총장이 첫 예방면담에서 “만일 OECD가입협상이 성공하면 자기가 기여했다는 사람들이 무수하게 많이 나타날 것이나, 실패하면 전적으로 협상대표의 책임이 되게 되는 것이 무서운 현실”이라는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직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장으로서의 행동의 기본이 되고 있습니다. 즉, 조직의 대표는 그 공과에 대하여 ‘과’라고 할 수 있는 책임은 조직원과 공유할 수 없으되, ‘공’이라고 할 수 있는 성공은 공유할 수 있겠으며, 결과적으로 대표가 성공하여야 조직이 성공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할 나위 없이, 여기에서의 “대표”는 한국은행으로서는 총재, 국·실로서는 국·실장, 팀으로서는 팀장을 나타냅니다. “장”이 혼신의 힘을 다해 헌신하지 않고서는, 규모에 상관없이, 조직이 잘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얘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 부분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 부분에 할애하고자 합니다만, 중앙은행으로서 한국은행이 당면한 국제적·국내적 과제를 함께 논의하고자 하며, 두 번째 부분에서는 이에 상응해서 우리가 내부적으로 변화해야 할 업무관행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몇 가지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우리 내부의 세세한 행정에 관한 조직운영문제는 다른 기회에 여러분들과 논의하고자 합니다. 우선 국가경제에 대한 중앙은행의 역할, 즉 우리가 어디에 서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총재로서의 소견을 밝히고자 하니, 여러분들도 총재의 의견을 참작하는 한편, 동시에 여러분 각자의 생각을 다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은행 특유의 문제라고 보기보다는 금융위기 이후 대다수 중앙은행에 해당되는 과제도 다수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다음 현 대내외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 및 그 이후 중앙은행 역할의 재발견, 그리고 본 강연의 핵심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은행이 도전하고 해결해야 할 대·내외 10대 과제가 제기되고 이에 대한 논의가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변화해야 할 업무관행에 관하여 몇 가지 제안하면서 강의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중앙은행의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할 몇 가지 이슈들을 중심으로 얘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현 대내외 경제 환경에 대한 인식>



한국은행의 바람직하고 보람된 앞날을 모색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경제의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우리나라 경제의 발전모습에 대한 공통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물론 국제경제 환경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어야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중앙은행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에게 우리는 이러한 시각보다는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부터 강조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나에게 무슨 이익을 가져오는가를 묻는 것은 매우 원초적인 질문입니다. 그러나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로서 글로벌경제에 대한 참여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이라는 측면을 차치하고라도, 글로벌경제가 어떠한 형태로 변화해야 하는 가에 대해 의견이 없으면 우리는 항시 남이 결정해 놓은 결과를 좇아가면서 소극적·수동적으로 우리를 방어하는데 급급하게 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주장과는 어긋나게 행동해 왔었으며, 이는 실제로 국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글로벌경제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 우리의 상대방과 대등하게 협의할 수 있어야 실제로 우리의 국익과 부합되는 결과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글로벌경제의 발전과정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전제되어야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중앙은행으로서의 한국은행의 역할도 적절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남이 생각해 온 것을 배워 온 개발도상국의 catch-up process 수준으로부터 글로벌 경제를 함께 운영해 나아갈 선진국 수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는 “나”보다는 “글로벌”경제의 앞날을 먼저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진정으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사고의 지평을 매우 넓혀야 하며, 동시에 우리 자신의 능력과 수준을 스스로 낮추면서, 이러한 역할은 우리의 책무가 아닌 것으로 간과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중앙은행 정체성(identity)의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대공황(Great Depression)이후 최악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고 있는 시기인데, 경제위기(economic crisis)뿐 아니라 경제학의 위기(crisis in economics)를 맞았다는 비판이 과거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하여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를 완전히 다시 써야 하는가의 과제는 경제학계의 숙제로 남게 되겠지만, 적어도 새로운 chapter를 추가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새 chapter가 다루어야 할 과제가 무수히 많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이번 global financial crisis이후 Wall Street로 대변되는 경제적 탐욕, 경제활동에 내재되어 있는 위험을 아주 소규모로 분산시켜 위험에 대한 우리의 경계심을 전적으로 이완시키는 데 기여하는 등, 한 마디로 우리의 지적 이해능력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발전한 financial engineering, 이러한 환경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게 된 글로벌 금융규제와 감독제도의 미비 등이 개혁과제로 거론되면서, 그동안 우리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던 다양한 이론들이 다시 정립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마치 한동안 경제를 풍미해왔던 rational expectations theory가 자취를 감출 것 같았지만, Sargent와 Sims의 Nobel경제학상 수상, 그리고 그들의 업적을 다시 논의하게 되면서, 일방적으로 특정 이론이 위축이 되고 그 대안이 대두되는 형국에 직면할 것 같지는 않게 되었다고도 보입니다. Behavioral economics가 과거에 비해 더 많은 경제활동양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다양한 이론들이 각각 경제활동의 일부분을 독자적으로 설명하는 역할은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분야가 한층 복잡다기해졌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경제의 글로벌화가 한 나라의 경제적 국경을 사라지게 만든 것에 더하여 학문 간의 경계도 사라지게 만들었으며, 따라서 이제는 한 분야를 아는 것만으로는 서로 엉켜있는 경제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충분하지 못하고 multi-disciplinary한 측면에서의 분석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시기가 되었다는 점은 명료합니다. 인간의 경제활동이 동태적으로 변화하므로 시대를 넘나드는 하나의 이론이 이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고, 한편에서는 매우 우직한 측면에서의 인간 경제활동의 근본적 원칙이 존중되어야 하며,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집단적 활동이 과거 우리들의 행태의 평균인 장기추세에서 벗어나는 경우에는 개별 각 경제주체들도 이에 유연하게 대처할 능력도 소유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을 투자에 여하히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던 경제이론의 환경으로부터 자본축적에 관한 Keynesian theory가 다시금 동태적인 역사적 관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번 글로벌금융위기의 최대의 발견이, 지나간 한 시대의 이론으로 치부되었던, Mynsky의 hedge-speculative-Ponzi finance로 특징지어지는 금융불안정(financial instability) 이론을 다시 머리에 되새기게 된 것이라는 평가마저도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고와 활동을 일반화시켜 설명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글로벌경제에서 각 경제가 서로 더 견고하게 연결됨으로써, 상호영향에 의거, 개별경제가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정상적인 장기적 트렌드를 벗어나는 경우가 더 허다해질 뿐 아니라, 우리 거래대상의 경제규모가 더 확대되는 결과로써 경제운영의 진폭이 더 커질 위험이 상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경제를 적절하게 운영해야 하는 책무에 더하여 risk management가 일상화되어야 하는 부담을 추가적으로 더 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특징적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아마도 경제의 boom and bust의 반복으로 표현되는 경기순환과정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현재의 위기가 systemic risk에 대한 관리가 결여된 것에 기인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 근저에는 다양한 형태의 imbalances가 원천적으로 누적된 것에 연유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 금융위기에도 그 근저에는 실물경제의 위기가 있다는 표현과 상통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발생하였을 때에 위기를 알려준 messenger를 위기의 요인으로 잘못 지목하면서 징벌하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경구를 새겨야 할 것입니다. 말할 나위 없이, 금융제도의 모순은 개혁하여야 하나, 동시에 경제의 근본적 불균형을 유발하는 실물을 포함한 여타 경제적 원인도 함께 치료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는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사후적 위기해결 방안에 못지않게 위기예방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해결하고, 새로운 글로벌 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금융규제를 개혁하는 과정의 핵심적 역할을 중앙은행이 수행하고 있다고 하여도 조금도 과언이 아니며,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기존의 이론과 경험만으로는 해결책이나 예방책 마련에 충분하지 않으므로 중앙은행이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thinker”로서의 역할을 하는 데에 일익을 담당해야 하는 책무를 지고 있으며, 이러한 논점이 바로 중앙은행의 추가적 역할에 대한 시사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중앙은행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논의에서 대두되는 몇 가지 이슈>



이번 금융위기의 가장 큰 특징적 교훈이 중앙은행의 역할을 재정립하게 된 것이라고 하여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Great Moderation이라고 대표되어지는 기간 동안, 성장과 안정을 향유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을 상대적으로 제한적 범위 내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던 측면이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볼 때, 세계적으로 75%가 넘는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금융안정의 기능을 어떠한 형태로든 수행하고 있었던 상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은 종래의 중앙은행의 역할을 재점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한국은행과 같이 부분적으로나마 금융안정의 책무가 새로이 추가된 경우에는 중앙은행의 역할 재정립에 있어서 더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위기가 닥쳐오게 되면 위기를 방지하지 못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우리를 에워싸고 있거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앙은행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은 실정입니다. 유럽국가의 개별 중앙은행은 집행기관으로서의 기능은 물론 수행하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논의하고자 하는 정책적 기능을 지닌 중앙은행으로서는 이미 역사적 유물이 되었고, Fed, ECB, BOE, BOJ, PBoC 등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부분이라고 하여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새로운 이슈들은 매우 많습니다. Basel III, Dodd-Frank Act등이 세계 금융 활동을 규제하는 새로운 규범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개혁이 완결상태에 달한 것은 아니며, Basel III의 자본규제는 2013년부터 이행기간을 거쳐 2019년 1월1일부로 총체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되어 있으며, 우리에게는 유럽은행들이 경험하고 있는 자본규제의 강화가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나, 앞으로 곧 효력을 발휘하게 될 유동성에 관한 규제, 즉 단기와 장기 유동성 규제인 LCR은 2015년 1월 1일, NSFR은 2018년 1월1일부터 각각 효력이 발휘되게 되어 있는데 이를 여하히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으로 남아 있는 상태이며, 또한 새로이 정의되고 있는 D-SIFI(SIB)에 관한 규제도 이에 해당하는 금융회사들에게는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규제와 감독관련 정책이나 제도의 변화에 못지않게 중앙은행들도 우리들의 평상시의 예상을 뛰어넘는 정책들을 다수 수행하였습니다. 이제는 과거 우리가 이해하고 있던 통상적인 수단보다는 비전통적인 수단에 의거한 정책들이 더 많이 수행된 현실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양적완화(QE), Operation Twist라고 불리는 각종 수단들, 매우 엄격한 Bundesbank의 전통을 이어받은 ECB의 LTRO를 통한 역할의 확대 등은 중앙은행의 위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게 할 뿐 아니라, 앞으로 이러한 정책들이 초래할 영향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정책들의 unintended consequences에 대한 분석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지금부터 거의 20년 전인 90년대 초·중반에는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렸던 일본경제의 침체에 대해 liquidity trap을 걱정하면서 저이자율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며, deflation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BOJ에 중앙은행으로서는 무책임(irresponsible)하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다량의 유동성을 공급하라고 Krugman교수와 함께 조언을 하던 Bernanke의장이 이제는 zero-lower bound에서 어떻게 스스로 탈출할 수 있느냐의 기로에 봉착하고 있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더욱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학자로서, 예를 들어 일본이 deflation 압력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target을 3~4%까지 높여 운영하라고 하여 놓고도 정작 책임을 지는 자리에 간 이후에는 이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관점의 변경 배경이 학계에서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라고 치부하는 것 이상의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만, 미국이 일본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Fannie Mae, Freddie Mac의 문제 등이 미국 중앙은행의 balance sheet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즉 toxic asset이 b/s에 남아 있는 한, 금융위기가 완전하게 해결되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볼 때,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했다고 볼 수 있고, 정상적인 경제 상태로 복원되는 데에는 비교적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BOE는 2%수준의 inflation targeting을 갖고 있으면서도 CPI가 거의 5%수준으로 상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장기 인플레 기대심리가 낮아지고 있다는 판단에서 자산매입을 위해 유동성을 확대공급하기도 하였습니다.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중앙은행으로서 쉽게 결단하기 어려운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사고와 기대치를 과거의 경험과는 달리 급하게 변화하고 있는 현실에 적응시켜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논의하겠습니다만, Post-crisis 중앙은행의 운영에 있어서 지적 리더십 및 독립성의 유지에 각별한 관심이 표명되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도전과제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중앙은행이 지적으로 변신(intellectual makeover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시도해야 하는 시점에 이른 것입니다. 개별 국가에 해당되는 사안이 글로벌경제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면, 바로 이것이 systemic risk로 대표되는 현 금융위기의 요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데, 우리는 어떠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해 중앙은행이 고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시야가 글로벌경제에서 벗어나게 되면 글로벌 경제의 안정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한편, 통화신용정책이 독립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겠으나 조금 더 외연이 확대된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operational independence를 여하히 유지할 수 있는 가는 앞으로 해결해 나아가야 할 과제입니다. 이 도전을 회피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를 회피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책무성(accountability)과 투명성(transparency)이 독립성의 전제라는 점은 예외 없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소통(communication)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치로부터의 독립은 물론이겠습니다만, 금융시장으로부터의 독립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특히 금번의 글로벌 위기가 Wall Street로 대변되는 국제금융시장으로부터 야기되었다는 점에서 금융시장으로부터의 독립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립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대두됩니다만, 이는 시간을 두고 논의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중앙은행이 이러한 새로운 시대적 변화를 이해하고 새로운 model을 창출할 능력을 지닌 talent들의 집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행의 10대 도전과제: 선진 중앙은행으로서의 비전수립을 위한 agenda>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한국은행의 역할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급변하는 대외환경에 우리의 금융관련 산업이 뒤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국가경제 운영에서 실물과 금융의 괴리가 야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금융을 실물을 중개하는 기능(intermediation)으로 개념화하는 경우에도 실물경제와의 괴리가 경제의 부를 창출하는 데에 지장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만일 Wall Street나 London처럼 금융자체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주요 산업으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 격차가 크게 여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제무대와 국내에서 각각 한국은행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제기하면 다음의 10개의 과제로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행이 추구하는 최고 가치가 물가안정이라는 명제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단지 이를 추구하는 방법이 선진화되어야 하고 세련되어야 한다는 점의 중요성은 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중앙은행의 설립 목적에 부응하는 다양한 업무를 모든 부서와 직원들이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하며, 그 결과로서 물가안정이 구현되어야 국가경제에 진정으로 기여하는 중앙은행이 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물가안정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누구나 예외 없이 본연의 책무를 완수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우선 국제무대에서 한국은행의 역할을 크게 나누어 처음의 세 가지 과제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논의의 전제는 글로벌이슈를 논의하는 데에 있어서의 주어는 내가 아니라 글로벌경제라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글로벌 경제를 운영하는 주체가 된다는 인식을 갖고 논의를 하는 것이며, 이러한 논의가 국내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가는 그 다음에 순차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글로벌 이슈를 우리가 선점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 global governance에 관한 의제입니다. 우리는 모든 경제가 어떤 형태로든 서로 연결고리가 작동하고 있는 global economy에 살고 있다는 것은 다 인정합니다만 global jurisdiction이 없다는 것의 중요성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없기에 글로벌 경제에 안정이 유지되기 힘들다는 것에 이의를 달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 국가경제에서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동일한 논리로 global economy에서의 international lender of last resort는 누가 해야 하나요? 바로 이것이 현 위기를 조속하게 극복하지 못하게 된 연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지금 많은 선진국들이 QE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각종 유동성 공급정책을 수행해 오고 있습니다. Public (official) source이던 private source이던 Global liquidity가 늘었다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Capital flow가 국제적 이슈가 된 지 오랩니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석학들이 모여 IMPC의 설립을 건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중앙은행총재들이 개별적으로 국내 유동성을 관리하듯이 글로벌 유동성을 총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자본시장이 개방되어 있는 경우에는 이러한 과제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G20과 같은 형태의 글로벌 forum이 jurisdiction이 결여된 것의 보완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그 대안이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분석이 요구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에 관하여 현재의 접근방안이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글로벌 equilibrium을 가져올 수 없다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봅니다. Lehman collapse로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글로벌 위기가 eurozone 국가들의 sovereign debt 위기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의 해결이 국제금융시장 안정의 관건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ECB의 노력이나 IMF등의 지원이 어떻게 보면 eurozone 경제의 local equilibrium을 추구하는데 집중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 결과는 대표적인 multiple equilibria의 경우이며, good and bad equilibrium이 공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균형자체가 안정을 유지하기 어려운 knife-edge equilibrium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다시피 eurozone경제들의 안정을 위해 양적완화정책이 추진된다면, 비록 그 지역경제들은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 몰라도 만일 그러한 정책이 신흥경제국들에게 negative spillover effects를 유발한다면 그야말로 good and bad 균형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global equilibrium이 달성되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global equilibrium을 찾으려는 노력이 local equilibrium을 성취하려는 노력에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이며, 이를 위해서는 emerging economies가 실증분석에 의거한 의견을 수립하여 이를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셋째, 부분적으로 앞의 문제와 연결된 과제입니다만,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의 해결도 궁극적으로는 global economy의 경제적 회복능력에 달려있을 것인 데, 현금의 세계경제의 성장은 emerging Asia에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글로벌 GDP성장에 emerging Asia의 기여율이 70년대의 30%수준에서 그 이후 45% 수준에 이르렀고, 그리고 지난 5년 기간 위기극복과정에서는 50%에 달하였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현 수준이 유지될 것이라는 IMF를 위시한 국제기구의 전망에 유념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경제위기에 처한 몇몇 eurozone경제에 전 세계의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위기를 전염시키지 않게 하는 장점은 있겠으나 전 세계 경제를 위기로부터 구하지는 못한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Contagion effect가 어느 정도 제어될 수 있을 정도로 국제금융시장이 안정되었다고 판단하는 지금, 정책기조를 바꾸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공론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역할일 것입니다. 자원이란 근본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곳에 투자되는 것이 경제의 기본원칙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장을 이끌고 있는 emerging Asia에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글로벌 노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글로벌 정책이 이러한 방향으로 수립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어떠한 전략과 논리와 증거로 이러한 방향으로의 정책전환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하나요? (계속)



(서울=연합인포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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