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총재가 지난 주말(16~17일) 한은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집행간부 및 부서장 워크숍에서 발언한 연설문 전문입니다.



넷째, 앞의 세 과제가 글로벌 의사결정에서 우리가 수동적으로 남이 정해 놓은 방향대로 이끌려가지 않으려면 선제적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한다면, 우리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내부적 과제도 다수 있다고 봅니다. 매우 심각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과제가 급속한 고령화추세의 영향에 대한 대응책 마련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잠재성장력이라는 데에 이견을 달기 어려울 것인 바, 고령화가 잠재성장력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성장잠재력이 하락하는 데, 경제에 불균형이 누적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물론 단기적인 시각에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개별적인 정책과제는 모두 성장잠재력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개념에 속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통화신용정책도 당연하게 이를 고려하면서 수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고령화 속도로 보면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더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다는 점이 크게 부담이 되고 있고, 이런 의미에서, 일본의 사례가 좋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는 지난 1980년대 후반이후 자산버블의 붕괴와 이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통화정책의 실패여부가 경제학계의 오랜 논의의 초점이 되어 왔습니다. 일본의 통화당국이 비난대상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분석에 의하면, 두 번째 잃어버린 10년의 경우, 비록 일본경제의 GDP 성장률은 역시 G7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낮았지만, 일인당 GDP성장률은 비슷하였으며, 취업자당 일인당 GDP성장률은 일반적인 예상과는 반대로 가장 높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통화정책 뿐 아니라 여타의 모든 거시경제정책들이 고령화의 영향에 대처하지 못한 결과라고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화신용정책을 포함한 우리의 거시정책과제들은 이러한 추세를 여하히 반영해야 하나요? 성장 동력이 낮아지는 경제 paradigm에 당면하게 되면 어느 나라이던 zero-lower-bound가 현실로 닥쳐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추세를 고려한 inflation targeting 정책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나요?



다섯째, 정책결정에서 장기와 단기의 시계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통화당국은 단기적 인플레이션보다는, 그리고 인플레이션을 구성하고 있는 공급요인보다는 수요측면에서의 인플레이션 압력이나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을 정책의 주목적으로 삼고 있기에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특히 통화신용정책은 선제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례를 들면, 금리의 효과는 중장기에 걸쳐 나타나므로, 장기적 변화 전망을 염두에 두고 결정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단지 각 경제의 상황마다 정책효과가 나타나는 기간이 다를 수가 있으므로 이를 감안한 정책결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금리경로를 사전에 전망하고 이를 발표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Riksbank의 경우, 6개월 후의 금리경로를 주 논의 대상으로 삼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앙은행의 정책효과가 장기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안정에 주목적이 있다면 우리도 그러한 맥락에서 논의를 진행시키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금리정책이 단기적, 특히 공급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 상승을 억제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엇보다도 중앙은행으로서는 우리의 금리정책 분석과 예측 능력을 강화하여야 하겠습니다만, 이러한 논의가 가능하게 될 환경을, 즉 중앙은행과 다양한 경제주체들과의 소통하는 여건을, 어떻게 구축하는 가도 중앙은행의 주요한 역할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항시 중앙은행의 능력을 벗어난 기대를 경제주체들이 갖게 되며, 중앙은행은 능력 밖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든지 아니면 그렇게 인식되는 위험을 회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섯째, 우리나라는 지난 해 무역규모가 1조 달러에 달하였습니다. 우리 경제규모에 비할 때,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경제의 개방성과 글로벌 경제에서의 활동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경제 상태에 상응하는 금융환경은 어떠해야 하며, 통화신용정책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country-specific한 면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점입니다. 실물경제와 금융이나 통화정책의 괴리에 대한 분석이 요구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외거래 확대로 예상치 못한 형태의 대규모 해외자본 유입, Global SIBs의 국내시장 진입, 이러한 활동이 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systemic risk, 이를 감당할 한국 특유의 거시건전성 정책 등 고민할 내용이 산적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방된 경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하여 국제적 정책파급효과(international transmission mechanism of policy effects)가 이전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거래하고 있는 주요 무역대상 경제의 인플레이션이, 예를 들어, 2%인 경우와 5%의 경우, 우리의 국내 인플레이션이 동등하게 유지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측면을 적절하게 고려하지 않은 국내 요인 위주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분석과 정책이 유효하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전 세계에서 EU와 미국과 동시에 FTA를 맺고 있는 나라가 어디에 있겠으며, 앞으로 한중일 FTA가 추진되는 경우, 우리의 경제적 특성은 매우 특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야말로 price-taker라는 의미에서의 전형적인 small open economy인 우리나라의 통화신용정책이 대표적인 large (relatively) closed economy인 미국에서 개발된 정책을 그대로 원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심사숙고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ECB가 변화해 가는 모습도 눈여겨보아야 하며, Swiss 중앙은행의 독자적 정책노력도 연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가 G20의장국으로서 주창하였던 GFSN에 대해서도 선진국의 중앙은행들은 자국의 입장에서 moral hazard 등을 이유로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regional financial arrangements를 구축하고 금융협력을 강화하는 등, 각각의 환경에 상응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범을 준수하는 문제와 자국의 국익과 관계되는 의제를 발굴하고 이를 추진하는 문제는 별개이며, 이제는 이러한 노력이 중앙은행에게 중요한 의제로 등장하였고 이러한 문제를 풀어 나갈 능력을 갖추게 되는가가 선진국이 되는 관건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곱째, 우리는 특유의 geo-political risk를 갖고 있으므로, 어떠한 자그마한 충격에도 다른 경제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역사적 유물이기도 합니다만, 97년 말의 외환위기 이후 자본자유화는 emerging economy중에서 선두에 서있는 상황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미국의 downgrading, eurozone sovereign debt crisis 등의 영향을 특히 환율의 변동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크게 받은 경제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인 것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중장기적으로는 외환시장이나 자본시장을 더욱 확대시키고 심화시켜 나아가야 하겠으나, 단기적으로는 자본시장의 불안정과 환율의 변동성을 줄이려는 노력을 그 어느 나라보다 더 세밀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일본 및 중국과 currency swap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자본시장의 안정을 기하였으며, 외환건전성 부담금이라는 거시건전성 정책을 도입함과 더불어 이를 IMF 및 OECD 등과 같은 국제기구들과 협의하였고 가능한 한 이 정책이 신흥경제권이 자국의 시장안정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국제규범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회고해 보면,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바람직한 노력의 일환이었으며, 내부의 안정 뿐 아니라 우리의 정책창출능력을 외부에 과시하는 긍정적 결과도 얻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단지,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새로운 정책개발노력이 앞으로는 우리의 내부 initiative에 의해 자발적으로 창출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덟째,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의 조화를 여하히 이루어내는 가가 향후 한국은행의 핵심 업무가 될 것입니다. 말할 나위 없이, 한은법의 개정으로 우리에게 새로이 부과된 책무를 우리가 성공적으로 성취해내는 것이 국가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의 잣대로 보면, 우리에게 수단은 별로 없으며 책임만 무거워졌다는 비판을 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글로벌 금융환경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담당하고 있는 systemic risk라는 것은 pro-cyclicality, inter-connectedness라는 표현이 특징적으로 말하듯이 규제로서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라 높은 분석력으로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사회 일각에서 한국은행법 개정의 내용이 부실하다는 것도 매우 단견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보고 실상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중앙은행이 금융안정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의 당위성은 앞의 각주에 명기된 『Rethinking Central Banking』에서의 세계적 석학들의 의견을 참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실제로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금융안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물가안정을 기한다는 것은 그 효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은 이 두 가지 정책을 여하히 조화롭게 수행하는 가이며, 특히 금융안정은 중앙은행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여타 정부나 감독당국과 협의하여 추진하는 것이 국제적 관행이므로 우리도 이러한 범위 내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립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및 유럽 모든 나라들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이므로 이를 회피할 수 없는 과제라는 인식을 갖고, IMF/BIS 등에서 새로이 개발되는 수단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연구하여, 우리에게 적절한 대안을 모색하는 지혜를 모아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국제적 networking, 국내적 다른 기관과의 협조체제 뿐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의 부서간의 정보공유를 위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홉째, inflation targeting을 근간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해 나아가는 여건에서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광범위하면서도 심층적인 분석과 연구가 수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CPI를 인플레이션의 지표로 삼고 있지만 우리가 수행하는 인플레이션의 변화내용이 CPI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미 보고서 책임자간에는 서로 이해가 되어 보완이 되고 있습니다만, 물가보고서와 통화신용정책보고서가 과거에 독립적으로, 즉 서로 보완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발간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inflation targeting에 대한 우리의 제한된 시각을 반영하였다고 볼 수 있기에 지수분석 위주보다는 더 확대된 시각에서 인플레이션 이슈를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즉, 앞으로는 inflation targeting을 목표로 하는 물가보고서는 금통위에서의 금리정책결정과정에 대한 분석을 포함하여 작성해야 적절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CPI 변화 분석에 주력하다 보니, price inflation의 중요요인이 되는 wage inflation에 등한하게 된 측면도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특히 작년의 중반정도까지 명목임금이 0.7%정도 오른 것은 매우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었습니다만, 이 현상의 물가압력과의 관계를 이해하였으면 수요측면의 물가압력에 대한 영향분석이 조금은 더 빨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비해 수요압력이 줄어드는 현상도 실은 이러한 변수로부터 일찍 파악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지난 2년 동안 경제통계국을 위주로 인플레이션 분석을 위한 보조자료가 다수 생산되어 실험 중에 있습니다. 미국과 같이 PCE자료도 만들고 있으며, 여타 몇 가지의 보조자료가 있으니 이를 내부적으로 적극 활용함으로써 인플레이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지난 연말 경제연구원에서 작성한 인플레이션분석 자료에서 제기되는 여러 정책이슈가 향후 물가보고서의 작성에 참고자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분석적 노력이 지속되면,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 결정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이해도가 가일층 향상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열째, 이 모든 논의가 중앙은행의 독립성문제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통화정책결정의 “최고의 가치가 독립성”이라는 이념이 존중되어 왔는데,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특히 금융안정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물가안정의 목표와 이해상충의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해, 누가 독립성을 행사하는 가가 적절하게 정의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럽에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출되지 않은 직책에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견제해야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미 제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치·행정부·시장으로부터의 독립이 지향하는 목표라면, 그런 결과가 국민의 후생에 더 보탬이 된다는 것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하며, 더욱이 그러한 권한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점에 대한 논리, 그리고 권한에 상응하는 책무가 무엇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일일이 우리가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증거를 제시하려는 노력은 지속해야 합니다. Caruana(2011)는 그것을 accountability와 transparency라는 개념으로 정의하였습니다만, 여기에 더하여 우리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Capacity building에 주력해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선진 중앙은행의 경우에도 자체의 능력을 부단하게 향상시킨 결과가 독립성의 유지의 관건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능력의 잣대는 우리의 경쟁자가 알지 못하는 정보나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만큼 안다는 것은 충분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그 일을 내가 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석에서 소개했습니다만, boom and bust cycle의 turning point를 아는 것이 party가 무르익을 때 punchbowl을 치우는 시기를 파악하는 핵심과제인데, 만일 금융안정의 기능이 없고 물가안정만을 다루는 입장에서 asset price bubble분석을 소홀히 하게 되면 punchbowl을 치우는 적절한 시점을 파악하기 어렵게 될 것이고, 바로 이 이유로 금융안정이 부분적으로 추가된 금번의 한국은행법개정은 물가안정에 관한 우리의 역할을 더욱 적확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론에 바탕을 둔 정교한 경제모형과 정책/제도와 시장문제를 다루어 온 오랜 경험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경기의 turning point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작업이라는 것은 명료합니다. 과거에 boom-bust를 알아야 하는 것에 상응하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지난 4~5년간 위기 극복과정에서 발생한 global liquidity, QE 정책 등의 negative spillover effects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우리에게 매우 시급한 과제인 것입니다.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며, 시장이 개방된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것이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과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방향으로 움직여 나아가야 하며, 이러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만이 독립성이라는 labelling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는 선진 중앙은행이 명실상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각자 나름대로 우리가 당면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마음속에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아마도 나하고는 반대의 순서로 얘기를 진행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순서가 반드시 중요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만, 의도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시각을 달리 가질 것을 주문하는 의도에서 이러한 순서를 선택한 것입니다. 본 section의 모두에서 지적하였듯이, 물가안정과 독립성이라는 목표와 가치는 중앙은행으로서는 존립의 이유에 연관되는 것입니다. 단지, 이를 성취하는 방법이 우리 구성원 모두의 역할과 노력에 의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 모두의 종합적인 노력의 결과로 얻어져야 한다는 점,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일들 중, 어느 것 하나 이 가치와 관계없는 일이 없다는 점,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 어느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논쟁의 소지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지금까지 설명한 것이 여러분들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기폭제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소통의 강화와 내부 관행의 변화>



이러한 도전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우리가 관심을 갖고 우리 스스로를 변화해야 할 몇 가지의 당부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소통의 문제, 이니셔티브·헌신·혼신의 노력으로 대표되는 업무태도, 국제기구에서의 활약 및 기여에 관한 소회의 세 가지 이슈를 제기하고자 하는데 이 모두 새로운 선진 업무관행의 정착에 관한 것입니다. 일반직원들의 업무 관행도 부분적으로는 관련이 있겠지만, 이 자리에 앉아계신 여러분들에게 주로 전하는 message라고 보면 됩니다.



지금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관심을 갖고 변화를 추구하는 분야가 소통입니다. 오랫동안 constructive ambiguity가 중앙은행 행동의 trademark처럼 이해되었고, Fed watcher라는 말이 풍미하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 벌써 먼 옛날처럼 들리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Bernanke의장도 일 년에 네 번의 기자설명회를 갖겠다고 천명한 바 있고 현재 그렇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통은 일방이 아닌 two-way라야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홍보라는 표현과 nuance가 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기도 하고 우리가 커뮤니케이션 국을 신설한 동기이기도 합니다.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요인은 말할 나위 없이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가한데 연유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금융위기의 시기에는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안정된 시기라고 할지라도 글로벌 추세가 진전됨에 따라 경제주체들 사이의 상호연관성이 더욱 확대되어 정보의 중요성이 가일층 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Information asymmetry는 이론적으로 볼 때, moral hazard와 adverse selection문제를 초래하게 되고,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herd behavior가 횡행하게 되면 경기변동의 진폭을 확대시키게 되어, 경제위기를 불러올 개연성을 증가시킨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정책을 수행하는 기관, 특히 경제주체들의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이 주요 업무 중의 하나인 중앙은행으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통은 쌍방향의 과제라고 하는 것은 소통이 제대로 안 된다고 표현할 때에 한 쪽의 일방적 오류에 의한 것도 있을 수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서로의 입장 및 경제에 대한 이해도의 차이에 기인할 경우가 많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어떠한 요인에 기인했는가에 불구하고, 한 가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중앙은행으로서는 시장과의 소통에서 consistent bias가 존재하는 가의 여부에는 항시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로 지금까지 시장에서의 행태를 유심히 관찰해 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장의 특정 그룹은 계속 중앙은행의 의도를 파악하고 다른 특정그룹은 계속 틀리게 이해하고 있고 이러한 행태가 일관된다면 그 이유를 파악해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결정이 항시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predictable해야 하는 가에는 동의할 수 없겠으나, 만일 의사결정과정이 transparent하지 않은 것에 연유한다면 이는 중앙은행의 credibility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되는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에 대한 입장과 이해도가 다른 경제주체들이 모든 문제에 대하여 동일한 견해를 가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모든 주체들이 동일하게 움직이면 herd behavior가 발생하여 오히려 경기의 진폭을 크게 할 위험마저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의견이 다른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물론 과거 어떤 시기에는 금융위기의 상황도 아니었고, 국내경제 위주의 단순한 경제패러다임 틀 속에서 소극적으로 소통을 한 측면도 있었겠으나, 이제는 그러한 환경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며, 만일 마치 소통이 개가 꼬리를 물고 빙빙 도는 형국(dog chasing its tail)과 같은 것이 바람직한 상태라고 기대하는 경제주체들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소통은 정보를 공유하고 불확실성을 줄이는 수단이라는 의미에서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팔이 경제학자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있어 왔었습니다만, 경제구조가 더욱 복잡해져가는 상황에서는 매우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하고, 이제부터는 과거와 달리 이를 확률적으로 전달하고 이해하는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긴 말 필요 없이, 이와 같은 요인 분석에도 불문하고 소통의 중요성은 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며, 당연하게 불평과 비판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그러나 글로벌경제에서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의 과제가 업무관행을 개혁하고 선진화시키는 것입니다. 선진국은 고위직이 바쁘고 후진국은 하위직이 바쁘다는 점을 누차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어떤 일의 initiative를 누가 쥐고, 누가 헌신하며, 그리고 누구의 혼백이 일에 스며들어가야 하는 가가 관건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고위직의 사명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하위직이 기안을 하고 이를 직급이 올라갈수록 의견을 첨가하여 가필하는 관행은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물론 의례적인 집행 성격이 강한 과제는 이러한 관행을 좇을 수 있겠습니다만, routine한 일이 아닌, 즉 새로운 아이디어가 요구되는 경우에는 과제의 design부터 고위직의 책임 속에 진행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래야 과제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거북스럽습니다만, 우리의 최대의 취약점은 고위직이 글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보고서를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견을 글로써 전달할 수 있어야 본인의 아이디어가 정리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물론 본인이 글을 쓰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고 더욱이 사안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용이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야 후배들이 더욱 확실하게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은 글만큼 정확하지 않고 기록되지 않은 것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행내 현상논문은 4~5급만 쓰는 것으로 관행이 정착되어 가고 있고, 행내 논문 수상자들의 이직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게 보이는 데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별로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풍토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학위소지자의 최후의 논문이 학위논문이라는 말도 회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단 한편의 논문을 남기지 않고 중앙은행 생활을 끝낸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물론 중앙은행이 연구소가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설령 조사연구 업무에 종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남길만한 경험이 많이 있을 것인데, 하물며 오랜 기간 정책부서에서 근무해온 전문가가 한편의 기록도 남기지 않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자원을 제대로 유지·활용하지 못하는 매우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개인의 혼백이 들어간 업적들을 후배들에게 전수하지 않고 그렇게 싱겁게 생활을 마무리해 버린다면 오히려 허망한 느낌이 들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제회의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국가를 대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회의에 가서 기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국제회의를 단체로 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각 개인의 기여도는 낮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지금은 국제forum마다 하위 직급이 참여하는 working group회의가 많습니다. 예산 제약을 감안하고, 또한 우리의 인재를 배양하는 목적을 감안할 때, 각자가 개별적으로 가능한 한 많은 회의에 참석하여 기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합니다. 모두에 얘기했습니다만, 총재가 수행요원들을 대폭 줄인 것에는 일반 직원들의 국제회의 참여 기회를 늘리기 위한다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회의에 가서 아무 기여도 안하고 오는 것이 조직에 아무런 부담을 끼치지 않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상당한 경우에 우리 조직의 이미지를 좋지 않게 만드는 부정적인 결과를 나타낸다고 보아야 합니다. 실제로 더욱 중요한 이슈는 이제 우리도 국제사회에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선진경제 국가들도 우리나라의 의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실정인데, 우리가 참여해서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입니다.



중앙은행의 활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는 Global investor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내외 금융환경임을 고려할 때, 국제회의의 참석이 결코 국내에서의 활동보다 우선순위에서 뒤지지 않는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야가 국내에 머물고 있는 한 국제포럼에서 우리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 국제무대에서 글로벌이슈를 다루고 이러한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국익을 대변하는 역할이 생활화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글로벌 이슈를 이해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서구보다 뒤떨어져서는 남의 뒤를 좇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며, 이를 극복해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것이며, 그러한 과업에 중앙은행이 기여를 해야 합니다.



<나가는 말>



조직을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는 기관장으로서 기관의 비전에 대하여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임이후 지금까지 계기가 있을 때마다 이러한 의견 피력기회를 가져왔습니다. 생각을 글로써 남긴다는 것이, 특히 조직의 장으로서 관례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담이 적지 않은 일이지만, 기존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조직의 장으로서 이 정도의 부담은 감내하고자 합니다. 모든 구성원들의 지식과 경험이 결집되었을 때에 그 조직의 능력이 극대화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오늘의 이 강연이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기폭제의 역할을 하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 2회에 걸친 승진자들과의 토의시간에 외부 책들을 소개하면서 institution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누구든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조직운영의 기본원칙이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지적자산의 중요성을 일깨워야 하며, 조직으로서는 rent-seeker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역사적 경험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국제기구와의 공동연구, 해외 직무훈련, 국내 GIP과정 등에서 이미 벌써 자랑할 만한 능력을 발휘하는 직원들이 여럿 나타나고 있으며, 직원들의 자신감도 불어나고, 미래가 밝게 볼 수 있는 조짐들이 많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지적토론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특히 젊은 직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기를 바랍니다. 국제무대에서의 토론에서도 보람된 아이디어만 있으면, 언어 문제는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보편타당한 논리를 주장해야 남이 나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의 국익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이슈를 먼저 선점하면 그 이후의 협상과정에서 우리의 이익을 지킨다는 것이 용이하지 않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우리를 연마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되며, “‘fish’를 주는 것보다는 ‘how to fish’를 가르쳐주는 것이 더 낫다”는 표현이 남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도 적절하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기 바랍니다. 씨앗을 뿌리지 않고는 수확할 수 없는 것이 이치이고, 단지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반드시 수확하게 된다고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 세상사입니다. 그래도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개인은 유한하지만 조직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미래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마치 우리의 취약점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우려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언론에서 우리를 매우 비판적인 시각에서 공개적으로 다루어오고 있는 상황이므로 우리는 이를 회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용기를 갖고 당당하게 맞서야 하며, 단지 우리를 개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난 2년만큼의 변화를 향후 수년 간 지속시킨다면, 단연코 우리 조직은 짧은 기간 이내에 매우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선진 중앙은행에 버금가게 될 것이며, 우리 조직원들에 대한 사회로부터의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한국은행이 결코 사회와 유리된 절간이 아니며, 현실에서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이면서도 국제적 감각을 지닌 전문가들이 등불을 밝힐 수 있는 지식의 보고라는 인식을 심을 수 있도록 최선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Smart한 인재들이 모여 있고, intellectual discussion이 강물처럼 흐르는 조직으로 바로 중앙은행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라고 다짐하는 계기가 금번의 workshop이 되기를 고대합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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