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연합인포맥스) 이성규 기자 = 1990년 7월 1일 서독과 동독은 정치통합과 동시에 화폐 통합을 단숨에 이뤄냈다.

독일통일은 겉으론 전세계 국가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시장 기능을 배제한 급진적 화폐 통합은 고실업·고물가로 이어지며 통일독일 경제를 15년간 시름케 했다. 심지어 통일 10주년까지만 해도 통독은 주변국가로부터 `유럽의 병자'(sickman of Europe)로 조롱받았다.

◇ 시장 아닌 정치가 화폐통합 결정

독일의 화폐통합은 정치 또는 제도적 통합이라고도 불린다.

정책이나 행정이 시장 기능을 대신해 화폐의 교환비율을 결정하고 통합의 시기도 결정했기 때문이다.

서독의 마르크화(DM)는 통일과 함께 공동화폐로 동독지역에 도입됐고, 동독의 마르크화(M)는 서독화폐로 1:1 교환됐다.

당시 동독 주민들은 유럽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통용되는 서독의 마르크화의 위력을 실감했다.

동독 주민들에겐 달콤했던 1:1 화폐교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통일독일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 충격은 서독보다 동독 주민에게 더 크게 다가왔다.

1:1 화폐교환에 따라 동독기업은 생산성이 임금인상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 자명했지만, 정치적 합의에 따라 동독 근로자의 임금을 서독의 근로자 수준으로 맞춰야 했다.

이 때문에 기존 동독지역의 기존자본은 파괴됐고, 외부로부터 자본유입은 방해받았다.

동독기업은 통일 이후 시장경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잇따라 문을 닫았다. 당연히 근로자도 일자리를 잃었다.

1:1 화폐교환이 통일독일 실업률 상승의 촉매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독일 실업률 1998년 9.2%에서 2005년 11.3%까지 치솟았다. 1990년 통일 직전 서독의 실업률은 6.4% 수준이었다.

◇ "화폐통합 시장에 맡겼다면 통일 못 해"
 

<사진설명: 에버하트 홀트만 할레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장>

독일의 경제 관료나 사회·경제학자들은 서독이 동독의 경제력을 고려해 화폐 전환율을 결정하려 했다면 독일 통일이 전격적으로 이뤄지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버하트 홀트만 할레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장은 "통일을 생각할 때 경제적 요인이 우선시 돼선 안 된다"며 "통일 이후 경제적 충격이 예상되더라도 통일의 가치를 생각하면 (경제적 충격은)구성원들이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현직 경제 관료도 통일 당시 1:1 화폐교환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독일 재무부 고위 관계자는 "서독과 동독이 1:1로 화폐교환을 하지 않았다면 수 많은 동독 인구가 통일 이후 서독에서 일자리를 찾으려 했을 것"이라며 "동독의 노동인구가 일방적으로 서독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1:1 화폐교환 정책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1:1 화폐통합이 실업과 물가 등 다른 경제지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화폐통합 전환율을 다르게 가져갔다면 동독의 능력 있고 젊은 사람들은 서독에서 일하기 위해 몰려 들었을 것이고, 늙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그대로 동독에 머물려고 하면서 국가와 지역의 경제 구조 자체가 무너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통합이 결정된 이후 곧바로 1:1 화폐통합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통일 이후 동독 경제는 지금보다 더욱 어려움에 빠졌었을 수도 있다.

서독과 동독은 통일 이전 이미 노동시장이 통합됐기 때문이다. 통일 이전에도 동독 주민이 베를린 장벽을 넘어와 서독에서 일자리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다. 당시 동독 경제는 노동시장이 개방되면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알렉스 린드너 할레대학교 경제연구소 박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지 않았을 때도 동독 사람들은 서독을 오가며 일자리를 구했고, 이 때문에 동독 경제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시장이 이미 개방된 상황이라면 통일시 화폐통합 비율은 크게 고려대상이 아니다"며 "다만 한국과 북한이 통일전 노동시장이 개방되지 않는다면 독일식 화페통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그는 "북한 경제가 개혁되거나 혹은 어느 정도 독립적이고 안정된 상태가 된다면 통일 이후 북한은 일정기간 고유의 통화를 갖는 것이 유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s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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