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살아오면서 '이상'과 '현실'의 선택은 항상 기로에서 갈등이었다.

맹목적으로 '이상'을 택했던 젊은날과 달리,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과 밥벌이에 천착하면서 '현실'은 슬그머니 '이상'을 밀어내고 주인 자리를 차지했다. 현실과 일상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자기 합리화가 뒤따랐다.

하지만 인간이란 빵 만으로만 만족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일과 현실의 반복 속에 잊었던 이상을 사진첩에서 다시 꺼내본다. 일의 목적은 무엇인가. 정녕 입에 풀칠하는 생계가 삶 그 자체 인가를 곱씹게 되는 것이다. 현실의 나무가 비루하게 생기를 잃을 무렵 이상은 넝쿨 담쟁이처럼 다시 감고 오른다. 물론 제쳐뒀던 이상을 다시 펼치려면 현실을 깨는 용기와 희생이 따른다. 항상 이 둘은 결정적인 순간에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이 기회비용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젊은 날이 지나 중년의 선택은 따라서 곧잘 타협점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고, 현실에 산재한 모순을 사랑하고 인정하면서 이상을 향해 점진적으로 조정해 나아가는 일종의 개혁을 지향한다. 이는 개인의 삶에서만 아니라 회사나 국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최근 홍콩의 정치 경제 상황을 지켜보면 이런 갈등의 모습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종교가 돈인 많은 홍콩사람들에게는 민주주의(이상) 보다는 국경절 특수(현실 돈벌이)를 한국과 일본에 빼앗겼다는 비난이 비등했다. 중국 본토 요우커 덕에 1년 소매매출의 10% 전후를 올렸던 국경절 특수가 시위 때문에 사라진 것은 뼈아팠다. 시민 사이에서는 현실 밥벌이를 놓쳤다는 아쉬움과 후세대를 위해 민주주의를 선택해야 하는 이상의 갈등이 첨예해지는 가운데, 시위대 또한 초장의 결기가 식으면서 민주화 시위가 지지부진 장기화할 조짐이다.

중국 본토는 '후강퉁'이나 '위안화 허브'라는 '당근'을 제시했지만 이를 시위대가 아랑곳하지 않자 상당히 열을 받은 모습이다. 내밀한 강력한 후속 압박을 채비하는 것 같은데, 예컨대 10월1일 이후 단순 여행객 통행증 발급을 중단하고, 본토인의 홍콩 방문도 쿼터제를 부활하는 것 등이다. 홍콩에 직접 타격을 가하는 고통스런 현실 경제 규제가 아닐 수 없다.

후강퉁이란 중국 상하이 증권거래소와 홍콩 증권거래소 간의 교차 매매를 허용하는 것으로, 외국인도 홍콩증권사를 통해 자유롭게 상하이 주식을 매매할 수 있게 하고, 중국 본토에 사는 개인들도 상하이 증권사를 통해 홍콩 주식을 사고 팔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자본시장 통합 정책이다. 본토와 단절됐던 홍콩의 주식시장이 하나로 통일되는 염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이는 동시에 독이든 사과가 아닐 수 없다.

홍콩인들은 단숨에 본토 거대한 자본시장에 통합되어 엄청난 기회를 누리지만, 동시에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본토의 지속적인 권위주의와 비민주주의를 참고 받아들여야 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상'을 담보로 '현실'의 선물을 받아야 하는 선택, 이들이 고민의 지점이 아닐 수 없다.

홍콩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과연 트로이의 목마가 될 것인지, 맥없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끓는 팥죽에 눈송이 떨어지는 신세가 될지 전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취재본부장/이사)

tschoe@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