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경환 부총리에게 "엔화가 어느 정도까지 내려갈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다. 최 부총리가 "최선을 다해 예측하려고 하지만, 신의 경지까지 못 가 있다"고 답변하자, 박 의원이 "부총리가 엔화가 어느 정도까지 갈지도 예상하지 못하냐"고 따졌고, 최 부총리는 "그걸 알면 벼락부자가 됐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언론은 환율이 내리면 수출기업 경쟁력 '추락'으로, 오르면 수입업체 '비명'이라고 제목을 붙인다. 환율이 재하락하면 한국경제가 '위험'하다고 하고, 다시 상승하면 '비상등'이 켜졌다고 난리다.

환율이 올라가도, 내려도 망한다는 보도를 보면서 '그러면 어떡하라는 얘기냐', 정작 외환딜러와 당국자도 혀를 끌끌 찰 판이다.

IMF를 겪으면서 국내 언론은 '환율'에 대한 트라우마가 형성됐다. 전혀 주목하지 않았던 가격변수인 환율이 한국경제를 뿌리부터 흔들어 버리자 충격의 후유증은 컸다. 금리와 주가는 국내용 가격변수에 머물러 있는 국지적인 지표활동에 비유됐지만, 환율 움직임은 작고 개방된 경제 체제하에서 지구 맨틀의 활동에 비교되는 '헤지'가 불가능한 총체적인 핵심 경제 변수였다.

특히 언론은 시장에 위험을 미리 알리지 못했던 부채의식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환율의 '환' 자만 나와도 경쟁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충실했다. 전 국민이 환율로 한번 크게 데었으니 관련 기사는 좀 더 자극적으로 제목을 달아야 '장사'가 된다는 경쟁적 언론 환경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했다.

외환위기를 불러 일으킨 주범들에 대한 재판이 있고, 선택의 문제인 경제 정책조차도 사법부의 판단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란이 지속하는 가운데, 환율은 정치권에서도 종종 정쟁의 도구로 활용됐다.

이런 현상은 경제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분석, 전망과 이해는 멀어지게 하고,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입장에 따라 호도될 빌미를 제공할 뿐이었다.

가격 변수 중에서 환율은 경제주체마다 득실이 엇갈리는 매우 전문적이고 첨예한 분야다. 같은 경제 주체라고 할지라도 때에 따라 득이 되거나 독이 되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잦다. 수출과 수입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여건은 물론이고 대내외의 금리와 주가 상황에 따라, 성장과 일자리, 투자와 소비 등 거시 변수의 여건에 따라, 일방적으로 좋다 나쁘다는 평가를 하기가 어렵다. 나아가 어떤 환율 수준이 국가 전체의 미래 이익과 손실을 줄지 정확히 추정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시장경제를 오래 해온 선진국일수록 언론과 정치권이 고도의 종합적 계산과, 시점에 따라 의사결정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전문 영역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되도록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사실 중심이고 가치 중립적으로 다룬다.

언론들도 가격 변수에 대해서 중립적인 표현을 하려 애쓰며, 예컨대 주가지수가 오른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선물과 옵션을 투자하는 이들에게는 현물지수가 오르는 것이 동시에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환율 수준과 전망을 놓고 의회에서 입씨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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