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금융과 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작용의 관계다.

특히 금융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적잖아 자유경쟁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조차 감독기관을 통해 은행을 통제하고 관리하며, 특수목적의 국책은행이 설립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책은행이 산업은행이다. 정책금융의 '맏형'을 자임하면서 정책금융공사와 5년만에 다시 합친 '통합산은'으로 내년 1월 출범을 앞두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외 경제가 상시적 위기 상태에 놓이면서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은 어느때 보다 중요해졌다.

글로벌 시장을 휘젓고 다녔던 국내의 우량 대기업들조차 저성장의 늪에 빠지면서 허우적대고 있다. 중소ㆍ중견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한민국 산업을 금융으로 뒷받침하면서 초고속 성장을 견인했던 국책은행 산은의 역할을 기대하는 시선들이 많아지고 있다.

통합산은법의 제1장 제1조는 산은의 설립 목적을 이렇게 못박고 있다. '산업의 개발ㆍ육성, 사회기반시설의 확충, 지역개발, 금융시장 안정 및 그 밖에 지속가능한 성장 촉진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ㆍ관리…금융산업 및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법에서 명기하고 있듯 산은의 역할은 국민경제 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원활한 자금공급에 있다. 산업의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돈의 혈맥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산은은 지금껏 그러한 역할에 충실하면서 대한민국의 수많은 기업의 생존과 성장에 기여해 왔다.

하지만 최근 산은을 바라보는 기업들의 시선이 썩 곱지만은 않은 것 같다.

특히 중소ㆍ중견기업에 대한 은행 문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책은행 산은도 그러한 기류에 동참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이후 3년간 산은의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실적을 살펴보면, 산은이 지원한 총 58조2천원 가운데 대기업에는 45조6천억원(34%), 중소기업에는 34조원(27.4%)이 공급됐다.

규모로는 비슷하지만 대기업에 지원한 자금의 3분의1에 가까운 28.5%가 투자였지만 중소기업에 지원한 투자용 자금은 불과 7%에 그쳤다.

위기의 상시화로 대기업 부실이 확산하면서 구조조정 기업이 늘어 생기는 갈등도 문제다.

최근 동부그룹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산은과 동부 오너 사이의 갈등은 사회적 논란으로까지 커졌다.

충분한 자금지원만 있다면 회생 가능한 기업들에 대해서 조차 가혹할 정도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산은도 나름의 이유를 댄다. 기업 성장을 위해 지원한 국민 세금이 경영 부실로 날아갈 판인데 무작정 지원만 해주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산은은 지난해 STX 구조조정을 통해 1조원이 넘는 적자를 봤다. 기업부실만 없었다면 7천억원 정도의 순익을 낼 수도 있었다.

홍기택 산은 회장 국감에서 "대손충당금이 추가로 발생해 올해도 수익 목표를 맞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은 우량 기업들을 지원하고, 은행의 수익보다는 기업살리기를 위한 금융서비스에 전력해야 하는 것이 산은의 정체성인데 은행의 수익을 논해서는 곤란하다.

국감에서 산은에 대한 몇몇 질타는 기업들에 대한 관리부실로 손실 입은 측면을 부각하지만, 부정한 지원의 경우가 아니라면 산업에 대한 지원이 늘 은행에 이익을 가져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민들에게 은행의 문턱이 여전히 높듯, 상당수 기업들에게 은행이라는 존재는 부담이다. 중소기업들에게도 그렇고, 한때 잘 나갔지만 난관에 봉착한 대기업에게 산업은행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정체성 공유가 필요하다.

(산업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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