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태문영 기자 = 유럽중앙은행(ECB)의 유동성 공급 조치의 실제 효과는 보이는 것보다 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ECB는 21일 3년 만기 장기대출 첫 입찰을 실시한 결과 유럽 523개 은행에 3년 만기 장기대출 4천890억유로를 배정했으며, 22일부터 대출을 시작하기로 했다.

대출 규모는 시장 예상을 크게 웃돌며 ECB가 이제까지 실행한 유동성 공급 조치 중에서도 가장 많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공급된 유동성 규모로 볼 때 금융시장이 일단 안정될 것이나, 유로존 채무 위기로 자금난을 겪는 은행권에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동성 공급의 효과에 대한 의구심은 먼저 이번 조치로 시장에 새롭게 공급될 유동성이 실제로는 4천890억유로보다 적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은행들이 신규대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ECB에서 받았던 단기 대출을 3년 만기의 장기 대출로 롤오버(만기 연장)할 것으로 진단됐기 때문이다.

이번 주 ECB가 공급하는 3개월물과 1년물 유동성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WSJ는 롤오버 물량을 제외하면 이번 유동성 조치로 시장에 공급될 신규 유동성이 2천100억유로뿐일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여전히 많은 양이지만, 시장 예상 규모였던 2천500억~3천500억유로에 가까워진다.

더불어 은행 523개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ECB에서 긴급 유동성을 받았던 은행 수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많은 은행이 ECB의 도움 없이 현재 상황을 견디겠다고 선택했다는 의미다.

ECB는 부실 은행에도 적은 비용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이는 재무 상태가 좋은 은행의 경쟁 우위를 약화시켜 은행 체계 전체가 중앙은행 자금에 의존하게 할 위험이 있다.

WSJ는 이번에 공급될 유동성 대부분이 기존 채권을 롤오버하는데 쓰일 것으로 내다봤다.

유럽 은행이 보유한 채권 중 내년 만기도래하는 물량은 7천억유로이며 이중 3천600억유로가 내년 1분기에 만기가 돌아온다.

ECB에서 조달한 유동성으로 롤오버를 한다면 유럽 위기 해결에 중요한 진일보가 될 수 있다.

롤오버를 하면 은행이 긴축해야 한다는 압박이 완화되고 대출 증가세도 수그러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 증가가 국가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지고 다시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 상승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WSJ는 이번에 공급된 유동성이 신규대출의 형태로 실물경제에 흘러들 것이라 확신할 수 없어 이번 조치 자체가 경기 회복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했다.

mytae@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