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성진 기자 =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채권시장에서도 '안전피난처(safe haven)'로 분류할 만한 투자 대상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 진단했다.

유로존의 재정문제로 유로존 국채들은 기피 대상이 돼버렸고, 과거 최고 신용등급을 부여받던 담보대출(모기지) 관련 채권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그 위상을 잃어버렸다는 이유에서다.

등급 강등에도 미국 국채는 거의 유일한 무위험(risk-free) 자산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연방준비제도(Fed)의 거듭된 양적완화(QE) 조치와 외환보유액이 늘어난 신흥국들의 수요 증가로 물량 부족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고 WSJ는 설명했다.

크레디트스위스에 따르면 시장에서 안전피난처로 간주할 수 있는 채권의 공급량은 지난 2007년 22조달러에서 올해 12조달러로, 4년 만에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크레디트스위스가 현재 안전피난처로 분류하는 채권은 미국을 필두로 독일, 프랑스 등 일부 국가가 발행한 채권뿐이다.

과거 안전피난처로 분류했던 독일과 프랑스 이외 유로존 국가의 채권과 민간이 발행한 모기지채권, 미국 국책 모기지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발행한 채권은 올해 안전피난처에서 제외했다.

공급량은 이렇게 대폭 줄었으나 수요는 줄지 않으면서 수급 불균형은 심화하고 있다.

안전자산에 주로 투자되는 신흥국의 외화보유액은 지난 4년간 4조달러에서 7조달러로 75%나 늘어난 상태다.

안전자산의 공급량 감소는 일단 투자의 안전판을 확보해야 할 투자자들에게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 핌코의 모하메드 엘-에리언 최고경영자는 WSJ에 "금융시스템에서는 중요한 것(something, 안전피난처)을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으로 대체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나마 미 국채가 무위험 자산으로서 위상을 지키고 있으나, 유로존 위기로 국채의 리스크가 드러났기 때문에 미 국채도 언젠가는 그 위상을 잃게 될 것으로 WSJ는 내다봤다.

엘-에리언 CEO는 "(미 국채가 무위험 자산의 위상을 잃기까지는)아직 시간이 남아있다"면서도 "무한정 시간이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무위험 자산으로서 미 국채는 지난 수십년 동안 다른 자산들의 리스크를 측정하는 시금석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미 국채가 무위험자산이 아니게 되면 그 결과는 "헤아리기 어렵다"고 WSJ는 진단했다.

WSJ는 국채에 대한 우려가 커진 탓에 시장 일각에서는 장기적으로 다국적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를 무위험 자산의 후보군에 두려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 일부 글로벌 대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미국과 스위스, 독일 등보다 낮은 상황이다.

WSJ에 따르면 네슬레와 엑손모빌의 CDS는 각각 66bp와 68bp로, 미국의 69bp보다도 낮다.

코카콜라의 CDS는 69bp로 미국과 같고, 월마트의 CDS는 스위스(84bp)와 독일(121bp)보다 낮은 77bp다.

WSJ는 "정부는 과세 권한이 있는 반면 기업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놀랍다"고 설명했다.

sjkim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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