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의 최근 현실을 보면서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외국 자본의 중요성도 느꼈고 이 자본들이 이탈할 때 국가 경제가 엄청나게 흔들릴 수 있다는 교훈도 얻었다.

달러환율이 1,700원대까지 치솟으면서 `저렴해진' 한국의 자산들을 송두리 채 헐값에 외국 자본에 뜯긴 기억들도 생생하다.

IMF가 구제금융을 제공한 국가들은 예외없이 환율자유화의 명목하에 변동환율제도로의 이행을 강요받게 되고, 외국 자본들은 반값 이하의 어처구니 없이 싼 값에 한국의 자산들을 매집해 나갔다. 결국 한국의 경제가 정상화된 뒤 해외 투자자본들은 큰 수익을 거두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정함이나 부도덕함, 혹은 국제 투기세력에 대한 원망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외환위기라는 비싼 댓가를 치른 경험을 토대로 국내 금융기관들과 국내 자본들이 `역공'의 기회를 맞이하지 않았냐는 생각을 해 본다.

최근 필자와 사석에서 만난 금융계 CEO A씨는 그리스를 위시한 남유럽국가들이 겪고 있는 사태가 한국 금융기관과 자본들에게 특별한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세계경기 불안과 유럽의 위기가 봉합의 수순을 밟아 나갈 것이라는 예측하에, 가격이 폭락한 해당 국가들의 공기업과 공공금융기관을 미리 사들여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국내 자본들의 규모와 실력, 경험은 그리스와 유럽국가들의 자산을 싸게 쇼핑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신중론자들은 이러한 발상에 반대한다. 남유럽 국가들이 자구계획 목표 달성할지도 의문이고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도 IMF 당시 공격해 온 자금은 주로 사모펀드였지 정규 금융기관은 아니었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사실 그리스 자산 매입에 나서고 있는 주체는 현재까지는 대부분 사모펀드(PEF)와 헤지펀드, 일부 국부펀드 등에 제한돼 있다. 그리스 CDS시장은 국적 불명의 헤지펀드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국내 금융기관들의 `그리스 사냥'을 감독당국이 승인해 주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걸림돌은 `금융실력'이다. 사모펀드를 만들어서 남유럽 `바센 세일'에 들어가자는 의견도 있을 법 하지만 대상 자산에 대해 상당히 정교한 가치평가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기엔 아직 국내기관은 그런 능력은 많이 떨어진다는 게 공통된 평가이기도 하다. 단순히 `작년대비 이만큼 빠졌으니 사자'라는 생각으로 남유럽 사냥에 나서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CEO A씨와의 대화 이후 며칠간 그의 주장과 논리가 계속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수년의 세월이 지나, 무릎을 치며 2012년 맹춘(孟春)의 상황과 대처에 대해 아쉬워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산업증권부장)

ted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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