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4년전 이맘때의 일이다. 2010년 11월11일을 전후로 일주일여 동안 전 세계의 이목이 서울에 집중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환율절하등을 통해 고개를 들기 시작한 보호무역주의를 타개하기 위해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모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은 '경제 펀더멘털이 반영될 수 있도록 보다 시장결정적 환율 제도로 이행하고 경쟁적인 통화 절하를 자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서울선언을 채택했다.

당시 서울선언에는 환율 갈등의 원인인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각국이 경상수지 흑자 및 적자폭을 국내 총생산의 일정 비율 이내(GDP±4%)로 관리한다는 가이드라인을위한 시한까지 제시됐다. 특히 환율의 유연성을 제고한다는 부문을 넣어 당시 과다 흑자국으로 지목된 중국을 견제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서울선언은 스탠드스틸(standstill:추가 보호무역조치 동결)을재천명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았다.

G20 의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상회의 폐막후 의장자격으로 진행한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환율 문제도 일단 흔히 쓰는 전쟁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4년이 지난 지금,이 전 대통령의 평가는 공허한 메아리로만 남았다.







<2010년 11월 '서울선언' 이후 선진국 통화인엔화와 유로화는큰 폭으로 절한된 반면 위엔화는 가파르게 절상되면서 G20 회원국간 환율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경기 부진을 넘어 디플레이션의 망령에 시달리던 일본이 2012년 아베 신타로 총리 취임을 전후로 가장 먼저 서울선언을 무력화시켰다. 일본은 무차별적인 엔화 살포로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주창하며 '우선 나부터 살고보자식 환율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선언 당시 달러당 82엔 언저리에서 움직이던 엔화는 지난주말 기준으로 117엔대로 치솟아 무려 43%나 절하됐다.

일본이 양적 완화로 재미를 보는 듯하자 유효수요 부족 등으로 디플레 압력에 시달린 유로존도 환율전쟁에 가담했다.

2011년 11월부터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18개국의 경제를 이끌고 있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주말 ECB 차원의 자산 매입 확대 등 경기부양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드라기 총재는 지난 21일독일 프랑크푸르트 ECB 본부에서 열린 유럽금융회의에서 "ECB가 목표로 잡은 인플레율 달성을 지체 없이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ECB 정책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거나, 인플레율 달성 전망이 한층 더 악화될 위험이 있다면 자산 매입의 규모와 속도, 종류를 그에 맞춰 바꾸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화는 이날 하루에만 1.2%가 하락하는 등드라기 총재 취임이후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절하 기조를 이어갔다.

미국과 함께 G2 국가로 거시경제적 대응을 자제하던 중국도 지난주말을 기점으로 환율전쟁에 가담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무려 2년4개월만에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했다. 1년 만기 위안화 대출 기준금리를 5.60%로 40bp, 같은 만기의 예금 기준금리를 2.75%로 25bp 씩낮췄다.위안화 절상 기조와 함께 경기에 시달린 중국이돈의 값인 금리를 낮춰서라도 글로벌 환율전쟁에 언제든지 뛰어들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4년전 철석같었던 G20 정상들의 서울선언이 지난주말 중국의 전격적인 금리인하를기점으로 완전 백지화되고 환율전쟁의 민낯이 드러난 셈이다.

환율 주권론자인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중경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금 유사 이래 가장 뜨거운 환율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외환당국이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어디로 휩쓸려 갈지도 모를 일이다. 소규모 개방 경제에다 수출이 유일한 버팀목인 우리나라가 환율 전쟁에서 어떤 스탠스를 가져가야할 지 입장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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