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올해도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경제·금융계 인사들도 연말 각종 모임 약속을 잡느라 바쁘다.

사람은 왜 사람을 만나고 또 만날까. 외로운 존재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인간은 예외 없이 '혼자' 세상에 태어나서 '혼자' 떠나기에 사는 동안에는 혼자서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며, 누군가에게서 도움과 위로를 받아야 하고, 살갑게 온기를 나누는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한없이 바쁘도록 유전자의 명령을 받았다.

혈거(穴居)시대 때부터 인간은 성장하면서 실존적 외로움에 흐느끼며 친구와 애인을 찾는 사회적 동물로 진화했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관계의 연결망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공고화하고 비즈니스로 엮어 생존의 영속성에 기반을 다진다. 현대사회는 갈수록 믿을 것은 관계망이라는 생각을 더 견고하게 만든다.

하지만, 명함 돌리고 눈도장 찍는다고 관계망이 저절로 늘어나고 심화하지 않는다. 연말에 동창회나 각종 모임에 얼굴을 내밀고 많은 사람과 만나며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어 보지만, 신년에 되어 막상 필요한 순간에 연락할 만한 사람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넓은 관계'가 '깊은 관계'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네트워킹은 짝을 찾는 일과 비슷하다. 애인 만들려고 파티에 나가고 나이트클럽에 드나들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언제나 결론은 빈손이 된다는 걸. 비즈니스에 필요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 많은 곳에 간다고 진짜 파트너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친구를 통해 소개를 받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상대방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얻고 친구가 자기를 괜찮은 사람으로 선전하기 때문이다.

모임에 가면 지인들 자랑에 입이 바쁜 사람이 많다. 유력자 누구와 친하다, 그와 가까운 사이다, 대놓고 자랑하기보다는 은근히 과시하는 유형도 있다. 그러나 누구와 가깝다는 걸 자랑하는 이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잘나가는 지인 덕분에 자신의 존재감이 확인된다면 자신의 존재는 무엇인가. 유력자 친구에 대한 자랑이 커질수록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초라함만 비례할 뿐이다.

대부분 사람은 근사원친(近捨遠親, 가까운 사람은 소홀히 하고 멀리 있는 사람을 찾음)하는 우를 범한다.

바쁘게 사람을 만나러 다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청할 얼굴을 떠올리지 못한다. 홍수에 마실 물 없는 격이고, 군중 속의 고독인 셈이다. (참고서적, 부자들의 저녁식사, 2003년 도서출판 거름, 최기억 지음)

'얼굴 아는 사이', '조금 가까운 관계', '가까운 사이', '속내를 터놓는 아주 가까운 사이', '죽고 못 사는 핥고 빠는 관계'…이번 연말에는 어떤 인간관계에 집중해야할까.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 회사의 부서 동료와 상사를 버리고, 멀리 있는 유력자들, 두 다리 세 다리 건너 지인들 찾는 부산함에 허무감만 쌓이는 연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혹여 첫 만남, 첫 시선에서 서로 알아본다면서, 내 안의 주파수가 그 사람의 긍정 에너지와 부딪혀 환한 빛을 낸다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에 대한 갈증으로 거리를 헤매는 당신의 모습이 이 연말에 더욱 초라해지지 않기를 기대한다.

(취재본부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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